“약함 그대로 인정받는 권리” 위한 열렬한 글쓰기

  • 20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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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출작가 인터뷰
[토요판] 은유의 연결
<그냥, 사람> 출간한 홍은전 작가

임용고시 날 찾아간 노들장애인야학
문 열자 맨홀에 빠지듯 다른 세계로
장애운동 역사 함께한 13년을 거쳐
세월호·형제복지원 등 인권기록활동

“내가 노들에서 한 모든 것들은
차별을 저항으로 만드는 일
누가 광장에서 운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 위해 우는 일이라 생각”

고양이 홍시를 키우며 눈뜬 동물권
DXE 종차별주의 반대 활동 배우며
인간 중심 질서 맞선 운동으로 확장
싸우는 사람 사라지지 않는 사회 소망

사범대 4학년생 은전은 딱 1년만 방황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거대한 선착순 달리기 시합 같은 임용고시가 두려웠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 알아볼 겸 노들장애인야학을 찾아갔다. 건물 입구에는 휠체어를 탄 남자 셋이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은전은 뒷걸음질 쳤다. 난생처음 ‘실물’ 장애인을 본 몸의 자동 반응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되돌아갔다. 장애인보다 무서운 것은 내 안의 편견이란 생각이 스쳤다. 용기 내어 노들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가 2001년 8월24일 목요일 저녁 7시40분, “길 가다가 맨홀에 떨어지듯” 홀연 다른 세계로 빠져든 순간이다.

그는 노들야학 교사가 되었으나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했다. 20∼30년을 방안에만 갇혀 산 사람을 야학에 오게 하는 법, 휠체어 탄 중증장애인들과 바다로 모꼬지 가는 법을. 교육은 투쟁을 불렀다. 장애인 이동권 확보, 활동보조서비스제도 도입, 탈시설 운동, 장애등급제 폐지 등, 그의 동료 교사와 학생들은 남들 같은 일상을 살아보고자 싸웠고 그들의 투쟁은 한국 장애운동의 역사로 남았다.

“글쓰기는 사랑하는 것들을 불멸화하는 노력”이기에 2014년 노들을 떠나며 그는 노들에 미쳐서 산 청춘 13년을 <노란들판의 꿈>이란 책으로 묶어냈다. 그 과정에서 과거와 미래에 관한 고귀한 진실을 발견했다. 그가 만난 장애인은 차별받는 사람이 아니라 저항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은 저항하는 사람들, 운명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에 마음을 뺏겨버린다는 것. 그의 펜은 형제복지원 피해자, 세월호 유가족, 화상 경험자의 삶에 가닿았다. 현재 인권기록활동가이자 <한겨레> 칼럼 필진으로 활약 중이다. 우리 사회가 등 돌린 ‘사람’의 이름을 꽃처럼 불러주다가 스스로 눈물이 되어버리는 홍은전의 열렬한 글쓰기는 지난해부터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동물’로 그 세계가 확장되었다.

장애인야학 교사에서 인권기록활동가, 그리고 동물권활동가로. 그의 급격한 존재 변신을 견인한 일상의 혁명가들 면면을 담아 <그냥, 사람>을 최근 펴낸 홍은전(41) 작가를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났다.


 


학교 오는 법부터 배우는 장애인야학
 

―처음에 왜 하필 노들야학을 갔어요?


“포털사이트에서 야학을 검색했는데 노들야학이 가장 먼저 나왔어요. 저는 학교에서 장애인을 본 적도 없고 장애 쪽에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낯설고 먼 환경으로 떠났어요. 글에서도 마치 해외 유학을 간 것처럼 ‘나는 노들에서 공부했다’고 썼고요. 노들에서 무엇을 공부했나요?


“제가 초·중·고등학교, 대학까지 다 합쳐서 12년간 배운 모든 것을 다 제로로 만드는 학교였어요. 여기에서는 누군가를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다 쓸모없어졌고, 국어, 영어, 수학, 사회 다 필요 없고, 교육은 너무나 할 게 많은 거예요. 이 학생이 야학에 오게 만드는 것. 그러려면 세상이 바뀌어야 되고요. 그래서 투쟁도 해야 하고. 학생의 자신감이 많이 위축되어 있는데, 그 자신감도 함께 끌어올려야 하고.”


―학생들 자신감은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어요?


“일단 여기에 오면 자기 탓이 아니라는 걸 되게 빠르게 공감해요. 왜냐하면 20년, 30년을 다 집 안에만 있었고 집에서도 자기 혼자니까 장애인은 장애인을 알 것 같지만 장애인도 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티브이에 나오는 장애인은 다 불쌍하거나 아주 뛰어나거나 이것밖에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장애인은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구나 생각하고 살던 사람들이 여러가지 우연이 겹쳐서 노들야학까지 오는 거예요.”


―학생들도 맨홀에 빠졌네요. 다른 세계로 이동했으니까.


“네. 여기 왔더니 우리는 권리가 있고 나가서 싸울 수 있다, 집에서도 주눅 들어 있던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 광장에 나가서 자기 몸을 펼쳐 보이고 세상을 향해서 외칠 수 있는 순간, 자신감이 아주 빠르게 회복이 돼요.”


―와,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귀한 경험 같아요.


“그럼요. 그 해방적인 경험들은 저도 노들야학 가서 했어요. 저의 선배 교사들이 학생들한테 끊임없이 말해요. 화가 나면 화를 내세요. 이거 다 가르쳐요. 학생들이 화낼 줄 모르세요. 집에서 자기를 케어해주는 엄마의 기분, 아빠의 기분이 너무나 중요하죠. 그래서 여기에선 짜증을 내도 된다, 시설에 가기 싫으면 가기 싫다고 말해도 괜찮다, 계속 얘기해요. 그거 보면서 저도 배웠죠.”


―임용고시 안 보겠다고 말해도 된다?(웃음)


“아버지가 싫었다고 말해도 된다.(웃음) 계속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저도 아빠랑 싸우고 있더라고요.”

 

야학 교사에서 인권기록활동가로


홍은전이 살면서 잘한 일 세가지는 이것이다. 노들야학을 시작한 것, 노들야학을 그만둔 것, 그리고 그것을 글로 쓴 것. <노란들판의 꿈>을 펴낸 이후 그는 <숫자가 된 사람들> <금요일엔 돌아오렴>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등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기록 작업을 위해 1년에 5명쯤 심층 인터뷰를 하고, <한겨레> 칼럼 12편 쓰고 나면 1년이 간다”고 했다.


―글쓰기를 어떻게 연마했어요?


“노들 활동을 책으로 정리하겠다고 마음먹고 글쓰기를 배우러 ‘한겨레문화센터’ 에세이반에 갔어요. 처음에 엄청 헤맸죠. 얼마 후에 <한겨레21>에 노들야학 이야기를 연재하게 됐는데 그때 대중에게 읽히는 글쓰기의 감을 잡은 것 같아요.”


―읽히는 글은 어떻게 써야 해요?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사람들은 메시지가 없는 글은 읽지 않는다.”


―그렇죠. 독자들과 나눌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글감을 어떻게 고르세요?


“슬펐거나 부끄러웠거나, 몸에 감정이 한번 왔다 간 것. 그 감정을 붙들고 써요.”


―그래서군요. 작가님 글에는 ‘심장이 폭 꺼지는 것처럼 슬펐다’ ‘목이 메었다’ ‘심장이 조금 아픈 느낌이다’ ‘가슴이 시렸다’ ‘수건을 푹 적시도록 울었다’같이 생동하는 슬픔의 표현이 매번 나와요. 눈물이 많은 편인가요?


“저 잘 안 울어요. 글에 나오는 그 순간만 우는 거예요.(웃음)”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작업이 힘이 들지만 힘이 되기도 한다고 했어요.


“화상 경험자 정인숙님이 화상 입고 다시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하거든요. 그분의 인생을 들어보면 정말로 그래요. 처음 걸음마를 하고 처음 꽃을 만져보고 처음 친구를 만들고 이런 과정을 다시 밟는 것 같은, 눈부신 게 있거든요. 저는 불안, 공포가 큰 편인데, 제가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어쨌든 한번 인생의 큰 경험들을 하신 거잖아요. 시련들을 먼저 겪었고. 회복하는 데 5년이 들고 20년이 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살 수 있어, 그게 되게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 저도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홍은전은 망원경으로 차별 시스템 같은 사회 구조를 보다가 현미경으로 인간 내면의 고통을 관찰하고 있다. 그런데 인권기록활동가 6년차인 어느 날부터 그의 글에 ‘야옹’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그가 지금껏 살아온 인권의 세계가 무(無)가 되어버리는 사랑과 혁명의 시간이 또 한번 도래했음을 예고하는 신호음이었다. 글 쓰는 일을 시작하며 그 좋아하는 술을 끊었던 그는 지난해 여름에 고양이를 들이며 그 좋아하는 고기를 버렸다. 홍은전은 채식주의자로, 동물권활동가로 빠르게 변신했다.


―저도 고양이를 키우고 주변에 애묘인들이 많지만, 모두가 은전 작가님처럼 바로 탈육식하진 않았거든요.(웃음)


“칼럼(2019년 9월2일 ‘동물적인 너무나 동물적인’)에서 우리 고양이 얘기를 하다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끝나거든요. 고양이로 글을 써본 적도 없지만 끝을 내본 적이 없는 거예요. 온통 고양이 생각밖에 없었을 때라 일단 쓰기 시작했지만 이 글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한 5일을 썼어요. 마감은 임박했고 에라 모르겠다, 거부할 도리가 없다, 고기 끊겠다고 마무리한 거죠.(웃음)”

―반전이네요. 최근 칼럼엔 인간적인 것에 지쳤다, 나는 동물이다, 라고 썼어요?

“어느 날 고양이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존재가 나타났는데 인터뷰를 못 하네. 알 수 없는 세계가 나타났음을 너무 구체적으로 느꼈죠.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니까 왠지 모든 게 언어로 가능하고 이해시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그것이 나를 좀 억압했나 봐요. 그걸 완전히 무용하게 만드는, 내 긴장과 피로를 제로로 만드는 존재를 만났다는 게 해방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비건이 되어야겠다, 생각하면서 돈가스를 끊고 우유를 끊고 하나씩 끊어가면서 지구와 빠르게 연결된다는 느낌이었어요.”

 

홍은전은 말한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세상은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라고. 그래서 그는 “약함 그대로 인정받는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곁에서 ‘사회 전체를 이동시키는’ 맹렬한 투쟁을 타전 중이다. <그냥, 사람>은 출간 2주 만에 1쇄가 소진됐다. “모든 인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노들야학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동물권단체 디엑스이 코리아에 평등하게 나누겠다”고 그는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밝혔다. 그냥 사람의 이야기는 그냥 사랑의 이야기로 물들고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68020.html#csidx1589687aec7349fb5d64fd4c6a4aa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