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연재-수강생 작품] 구멍(2) - 서아름 (서유미의 손바닥 단편소설 창작 39기 수료)

  •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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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강생 작품


 한동안 구멍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새로운 형태의 싱크홀이라는 주장이 가장 유력했으나, 일각에서는 지구 멸망의 전조라느니, 외계인의 소행이라는 둥의 신빙성 없는 주장도 떠돌았다. 이렇다 할 원인을 찾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의 관심은 서서히 사그라졌고, 은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은주에게 당면한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회사 앞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아니라, 며칠째 연락두절인 채 무단결근을 하고 있는 그녀의 사수였다. 첫 날에는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걱정하는 이들이 태반이었으나 이틀째엔 무단퇴사가 아닐까하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왔고, 사흘째엔 무단퇴사라는 의견이 기정사실화 되어있었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사수의 자리 위로 내려앉은 적막을 깨고 날카로운 벨소리가 울렸다. 대신 전화를 받은 것은 은주였고, 그녀는 사수의 부고를 전달받았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시신을 찾지 못한.
 사수의 죽음은 여러 공중파 채널에서 다뤄졌다. 구멍을 제대로 봉쇄하지 못한 지자체와 경찰공무원의 관리소홀을 비난하기 위함이었다. 사수는 출근 시간도 아닌 이른 새벽녘에 굳이 강남까지 와, 주위를 통제하는 경찰의 눈을 피해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고 했다. 그가 홀린 듯 터덜터덜 구멍으로 걸어가 몸을 던지는 장면은 근처의 CCTV가 생생하게 찍어냈고, 언론에선 어설픈 모자이크와 함께 그 영상을 공개했다. 구멍의 깊이는 측정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사수의 시신 또한 찾을 수 없었다.
 은주는 매일 아침 회사에서 마주했던 사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누군가 기억을 말끔히 잘라내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았다. 눈은 쌍꺼풀이 있었나. 코는 길고 높았던가? 혹은 매부리코였던가? 입술은 얇았던가, 두꺼웠던가? 귀는 크고 널찍했던가, 아니면 작고 단단했던가. 각진 턱이었던가, 둥그스름한 모양새였던가.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는 원래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지? 모든 걸 내버려두고 스스로 목숨을 내던질 법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나? TV 화면 속 어설픈 모자이크로 뭉뚱그려진 형체만이 기억 속에서 연기처럼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사수는 은주에게 있어 크게 의미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업무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문득 눈이 마주치면 슬쩍 미소 지으며 전날 저녁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회사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진 않은지 물어오면 으레 그렇듯 괜찮다는 대답을 하는, 겉치레와 본심을 적당히 섞어서 얼버무리는 가깝지만 어색한 사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몇 날을 곱씹으며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닌, 그냥 그 정도의 관계일 뿐이었다. 헌데 그 날 이후로, 사수가 구멍 속으로 천천히 하강하던 장면이 문신처럼 눈꺼풀 안쪽에 새겨져 눈을 감으면 그림처럼 떠올랐다. 밤이 지날수록 더더욱 선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