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회 손바닥 문학상 대상] 파지 (1) _ 최준영 (김현영의 다짜고짜 소설쓰기 수료)

  • 201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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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강생 작품

잔뜩 취한 오 부장이 오기 전까지도, 진철은 눈앞에서 익어가는 고기 한 점을 먹지 않았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진철에게 무언의 굴복 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 부장이 3분기 호황 실적을 축하하며 “위하여”를 외치기 전 덧붙인 말 때문인지도 몰랐다.

“불법 파업을 단죄합시다!”

본인을 저격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철은 꿋꿋이 잔을 들었다. 그 누구도 진철에게 술잔을 맞대주지 않았지만, 진철은 안면몰수하고 가장 크게 “건배”를 외쳤다. 시위라도 하듯이.

순간 회식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해졌는데, 분위기 메이커 박 대리가 재빠르게 “위, 위하여!”를 외치지 않았다면 꽤 난처해졌을 것이다. 어색했던 분위기는 어물쩍 넘어갔지만, 진철은 그사이 탄 연기를 마시는 바람에 술잔을 잡고 캑캑대고 있었다. 물이 아닌 소주를 한입에 털어넣으며 희뿌연 연기와 모욕감을 동시에 삼킨 진철은 계속해서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

진철은 회식 내내 석고상처럼 미동 없이 앉아 있었다. 술을 마시자는 사람도, 고기를 먹어보라는 사람도 없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를 도우면 본인도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같은 것이 분위기 저변에 깔려 있었다. 시끌벅적한 시간 속에서 진철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불판의 남은 연기와 함께 홀로 고립됐다.

잠시 뒤, 오 부장이 비틀대며 진철 앞에 앉았다. 그는 참이슬 한 병과 고춧가루 한 톨이 묻어 있는 소주잔을 턱 내려놨다. 박 대리와 김 대리는 혹시나 불똥이 튈까봐 바지춤을 잡고 쉬가 마렵다며 화장실로 피신했다. 진철은 겸허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말없이 소주 뚜껑을 열었다. 오 부장은 앉은키가 커서 진철을 위에서 내려다봤다. 진철은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 연거푸 마셨다. 잠시 빈틈이 보이면 오 부장은 “에헴”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사람들은 못 본 척 쉬쉬했다. 진철이 술을 못한다는 걸 알고 있는 몇몇 동료들조차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표면적인 대화들로서 그들의 모든 집중과 시선은 진철과 오 부장에게로 쏠려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진철이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나서야 오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진철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정진철, 너 인마 잘하는 놈이잖아, 할 수 있지?”와 같은 말 같지도 않은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한꺼번에 많은 알코올을 섭취해 시야가 흐려진 진철의 주위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말라비틀어진 항정살 몇 점만이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타고 있었다. 그사이 식당 아주머니가 불판을 빼며 “이거 먹을 거예요?” 하고 묻더니 진철의 앞접시에 새까맣게 탄 고기를 놓고 갔다. 몸을 가누지 못해 오뚝이처럼 앞뒤로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거라 착각한 것이었다. 진철은 차갑게 식어버린 고깃덩이를 초점 없는 눈으로 응시했다. 불현듯 예서가 떠올랐다.

회사에서 신임을 받던 진철이 갑작스레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한 데는 여자친구 예서의 영향이 있었다. 예서와 진철은 산다이테크의 유일무이 사내커플이었다. 사내커플이라 함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실상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두 사람에게는 어떠한 구설도 없었다. 예서는 생산직원이고 진철은 사무직원으로 부서가 달랐기 때문이고, 서로 사용하는 층이 달라 점심시간 30분이 겹치는 것 말곤 공통분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두 사람이 사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로서만 알 뿐 실체를 본 사람은 없었다. 손을 잡거나 연애를 하거나 눈빛을 주고받는 일, 보통 연인들이 하는 애정 행각 따위 산다이테크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사내연애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의 영향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옮겨와 괴롭히는 것은 진철에겐 매우 당황스럽고 이겨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1999년 밀레니엄 시대의 부푼 기대감을 업고 설립된 산다이테크는 얼마 전, 스티커, 잉크젯 라벨지 등을 만드는 생산공장을 파주에서 오산으로 옮겼다. 그 결과 10여 년을 이곳에 몸 바친 생산직원들, 5년간 손가락 휘어지게 스티커를 붙여낸 예서는 하루아침에 전근을 가야 했고, 결국 이 모든 것이 외주화를 위한 발판이라는 것을 알고 파업을 시작했다. 단풍이 낙엽으로 변질되는 계절이 되었을 때, 직원들은 파업 조끼를 입고 파주 본사 앞에 농성천막을 쳤다. 열다섯 명쯤 되는 인원이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천막 안을 파고드는데 한두 명만 자리에 없어도 냉기가 돌았다. 생산과장은 본인이 만든 견출지에 파업 참가자들의 이름을 차례로 적어 피켓에 붙였다. 그러면서도 불량을 발견하면 “이거 유통된 거야?”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실직 상태인데도 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생산과장을 보며 예서는 이름 모를 쓸쓸함을 느꼈다. ‘저 사람의 인생엔 일이 전부인데, 전부를 잃어서 무척 공허하겠구나.’ 예서는 본인 처지는 생각도 않고 그렇게 생산과장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파업은 진행 중이었지만, 당사자들 말고는 누구도 이 파업에 관심이 없었다. 공장지대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천막을 쳐다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출퇴근 시간에 회사를 오가는 직원들 말고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회사 직원들조차 시선을 거두고 모르는 체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나자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졌다. 당장 이번 달 생활비- 보험료, 통신료, 아이들 학원비, 교통비 등- 자잘하게 나갈 것은 많은데 월급이 삭감되니 불안했다. 애초에 파업을 포기하고 오산 공장으로 옮겨간 직원들이 부러운 사람도 있었다. 요새 생산직은 이렇다더라, 사내 하청이 아닌 곳이 없다, 같은 말을 들으면 본인들이 하고 있는 싸움이 달걀로 바위 치는 일이 아닌가 싶어 괜한 고립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불안함은 산다이테크의 회식이 있던 날 인사팀 과장이 주고 간 쪽지로 증폭됐다. 예서는 그 쪽지를 펴보았을 때,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앞뒤로 뒤집어보았다. 끄트머리에 이름이 휘갈겨 쓰여 있지 않았다면, 본인 것으로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서의 눈에 ‘발령- 영업팀’이라는 글자가 궁서체로 들어왔다. 거역할 수 없는 명령처럼 단호한 문체였다. 그것은 쪽지를 받은 사람들 모두 느끼는 감정이었다. 다섯 살 아들과 두 살 딸이 있는 문씨는 주먹으로 가슴을 턱턱 치며, 마흔두 살에 기획팀 인턴이 웬 말이냐며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

회식을 마친 진철은 파주 시내에 있는 롯데리아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구석에 앉아 있는 예서가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진철과 예서는 서로 다른 이유로 말이 없었다. 진철은 오 부장의 말을 생각하느라, 예서는 발령 쪽지를 생각하느라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문득 진철이 예서에게 뭐 좀 먹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면서 침묵이 깨졌다. 예서는 온종일 농성을 하느라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지 못했지만, 허기를 느낄 새가 없었다. 진철의 옷에 축적된 고기, 술, 담배, 그리고 그런 것들을 없애고자 황급히 털어넣은 은단 냄새가 속을 울렁이게 했기 때문이다. 예서는 괜히 그런 냄새가 나자 진철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못 먹고 농성한 사람을 앞에 두고 고기 냄새나 풍기는 그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반대로 진철은 빈속에 소주 한 병을 ‘원샷’ 하는 바람에 속이 쓰려 햄버거라도 먹고 싶은데, 예서가 먹지 않겠다고 해서 눈치가 보였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예서를 앞에 두고 게걸스럽게 햄버거를 먹을 수는 없어서 결국 다 식어빠진 감자튀김 두 봉지와 콘아이스크림을 사왔다.

“나보고 영업팀 가래.”

예서는 진철이 건넨 아이스크림을 감자튀김 봉지에 욱여넣으며 말했다. 반투명 포장지에 찐득한 아이스크림 국물이 희끗 비쳤다. 진철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모습을 지켜봤는데, 속에서 위액이 올라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도 쓴맛을 느꼈다.

“어떻게 하게?”

“뭘 어떻게 해?”

진철의 태도가 무성의하다고 느낀 예서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사실 예서는 파업을 시작하고 진철에게 쌓인 게 많았다.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하자, 한숨을 푹 쉬며 외면하던 모습이나 예서의 눈을 피해 농성천막 옆문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정말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가 맞나, 2년 사귄 애인 사이가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동료들조차 “진철씨 왜 옆문으로 돌아가는 거야? 헤어졌어?” 하며 의아해할 때마다 예서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예서는 진철의 상황을 알 리 없었다. 일부러 거리를 두는 거라고 진철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 간부들은 종종 진철을 불러, 농성자들의 정보를 캐내려고 했다. 예서가 여자친구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은 듯했다. 그들은 진철이 본인들의 편일 거라 확신했고, 그 태도는 아주 노골적이었다. 한 간부는 박예서가 원하는 게 뭔데 이 소란을 피우냐며 회의 시간에 진철을 대놓고 나무랐다. 어쩔 수 없이 진철은 예서를 피해 도망 다녀야 했다. 예서가 서운할지 모른대도 할 수 없었다.

“예서야, 오산 공장은 정말 싫어?”

몇 번이고 참았지만, 끝내 식도를 역류하는 위액처럼 그 말을 내뱉고야 마는 진철이었다. 예서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직 11월 중순밖에 안 됐는데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히터 바람 때문인지도 몰랐다. 예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바닥을 쓸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을 불러세웠다.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앳된 소년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멈춰섰다.

“춥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히터를 세게 틀어요?”

예서가 쏘아붙이며 묻자 아르바이트생은 히터 쪽으로 손을 올려보더니 “꺼져 있는데요” 하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가 떠나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에 예서의 눈에 눈물이 그렁 맺혔다. 반면 그 말을 들은 진철의 속에서도 일순간 뭔가가 욱하고 튀어올랐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것,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난 뭐 편하게 회사 다니는 줄 알아? 내가 파업하는 것도 아닌데 너 때문에 나까지 이게 뭐냐.”

“뭐라고?”

“회사에서 내 입장이 어떨지 생각해본 적 있어?”

본인의 상황이 진철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지 못한 예서였다. 약자는 본인이므로, 그 외 것들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진철은 오늘 회식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나, 예서를 피해 도망가면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간부들이 매일 찾아와 괴롭히는 얘기 등을 쏟아냈다. 그렇게 더는 어떤 찌꺼기도 남아 있지 않아 텅 빈 상태가 되었을 때, 진철은 아차 싶었다. 예서의 뺨에 눈물이 톡 떨어졌다. 예서와 사귀면서 단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보지 못한 진철이었다. 슬픈 영화를 봐도 우는 쪽은 늘 본인이었으니까.

진철이 조심스레 냅킨을 내밀었지만, 예서는 벗어둔 웃옷을 들고서 밖으로 나갔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예서에게 이런 상황은 버거울 뿐이었다.

 

*


며칠 후 예서는 파업 조끼를 벗고, 동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게 됐다고. 상황상 어쩔 수가 없다고.

동료들은 함구했고, 천막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생산과장은 파업 피켓에서 예서의 이름이 적힌 견출지를 뗐다. 예서는 웅크리고 서서 빈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예서가 선택한 것은 오산 공장이 아닌 영업팀으로의 부서 이동이었다. 오산 공장으로 간다는 것은 사실상 비정규직이 되는 거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서른다섯의 나이에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예서에겐 적성보단 고용 보장의 안정성이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새로운 일을 배우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란 예서의 기대는 출근 첫날부터 무참히 어긋났다.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