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 나누는 특강] 펍헙의 '번역이 궁금하다면'_ 강주헌 번역가

  •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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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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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사인터뷰
“유명한 책 아닌 나에게 맞는 책을 뒤져 기획해라”

“데드라인 넘기면 죽는다.”
일상에서 가끔 쓰는 말로 ‘마감을 꼭 지키라’는 의미다. 이 말은 실제 상황에서 나왔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남군을 사로잡았는데 가둬놓을 공간이 부족했다. 울타리를 만들기도 힘들어 바닥에 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넘으면 죽는다고 했다. 여기서 ‘데드라인’이란 단어가 만들어졌다.
강주헌 번역가는 “역사를 공부할 때 연대기나 사건 중심으로 보지만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색다른 재미가 있다. 단어의 어원을 공부하며 생각을 펼치는 것이 번역의 묘미”라고 했다. 그는 평소 구글 사전을 뒤져 단어 하나하나를 파헤친다. 단어의 어원만 따로 모아놓은 책도 구해서 본다. 기본적으로 검색 사이트는 영어 버전을 사용한다. 모르는 영어 단어가 나오면 찾아봐야 하는데 한국어로 보면 바로 연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강 번역가는 “번역은 (원문의) 문장이나 맥락에서 단어의 의미가 가장 적합하게 쓰이도록 하는 일이다. 해당 단어의 적절한 쓰임새를 찾는 게 번역가의 역할”이라고 했다.

검색 엔진이나 매체 글 뒤져 다룰 만한 주제 뽑아내
8월8일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번역이 궁금하다면’ 특강이 열렸다. 번역․외국어학교 대표 강사 가운데 한명인 강주헌 번역가가 ‘기획하는 번역가로 살아가기’란 주제로 강의했다.
강 번역가는 그동안 <오스카 와일드 산문집>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피카소와 함께 한 시간들> <문화란 무엇인가> <이슬람 미술> <우체부 프레드> <행복의 패러독스>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 <습관의 힘> 등을 번역했다.
펍헙(pub-hub)은 2002년부터 한겨레 글터에서 진행해 온 ‘강주헌의 번역작가 양성과정’ 후속모임으로 운영하는 번역 에이전시다. 현재 과정 수료생 가운데 20여명이 펍헙 에이전시에 소속돼 데뷔한 뒤 활동 중이다.

강 번역가는 초보(예비) 번역가들에게 단계별 접근을 강조하며 “하버드대, 예일대 등 유명 출판사 책만 찾으니 기회를 잡기 어렵다. 세상에 책은 많다. 나의 눈높이에 맞는 책을 진득하게 뒤지라”고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처음부터 출판사와 대중의 입맛에 맞는 번역을 하기 힘들다. 그는 “출판사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초보 번역가에게 일감을 줄 리도 만무하다. 유명한 책이 아니더라도 자기 실력에 맞는 책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 처음 번역을 시작하는 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깎아나가는 것, 즉 뺄셈이다. 
기획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강 번역가는 틈만 나면 인터넷 검색 엔진을 돌아다니고 매체에 실린 글을 읽었다. 이 과정에서 기획 출간할 만한 주제를 뽑거나 그것을 다룬 책을 찾았다. 키워드를 하나씩 만들고 그와 관련한 내용을 가치지기 하는 식으로 정리해나갔다. 그는 “매일 새로운 내용을 알아가는 게 너무 재밌었다. 실제 작업까지 이어지지 않아도 이렇게 쌓은 지식이 후에 관련 내용을 번역할 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알라딘 베스트셀러를 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글 키워드 검색으로 책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루 종일 꼬리를 물며 번역할 책 한 권만 찾아도 두세 달 작업량이 된다. 지루하게 그걸 어찌 하나 생각하면 번역도, 기획도 할 수 없다.”
강 번역가는 “가령, 예일대 출판부에 들어가서 ‘역사’를 검색하면 1000권 넘게 나올 거다. 질려서 그 책을 언제 다 볼까 엄두가 안 나겠지만 일단 시작해보라”고 했다. “100권 읽으면 그 가운데 한 권을 건질 수 있고, 200권 읽으면 두 권 정도 나올 거다. 꾸준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무작정 읽는 게 아니라 궁금증을 갖고 고정관념을 깨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관점 달리해 찾아낸 책 자체가 기회이자 일감
강 번역가는 단어를 검색하다 지식을 확장해 기획 아이디어를 만든 사례도 들려줬다. 영국의 민속학자 앤드류 영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생 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며 민담을 모아 7권의 책을 냈다. 하지만 모으는 데만 정신이 빠져 정작 책에 담긴 내용은 중구난방이었다.
그는 “무지무지한 작업이 되겠지만 그 책에 담긴 민담을 분석해 주제별로 분류해보고 싶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 우정 이야기 등으로 엮어내는 기획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유명한 동화가 무엇이지 어떤 책이 가장 잘 팔리는지만 따지는 게 아니었다. 동화란 어떤 장르인지, 세상의 동화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조사하다 우연히 민속학자를 알게 됐고, 7권의 책을 냈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심지어 그 책은 저작권도 없었다. 이런 기획 자체가 번역가에게는 기회, 즉 일감이 된다.
그는 최근에도 출판사와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번역 계약을 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세계문학전집은 많지만 대부분 요약본이다. 요약본 가운데 유명한 작품만 골라 사람들에게 원문을 다시 읽게 하는 기회를 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출판사 관계자와 얘기하다 기존 전집 시리즈가 많아 또 다른 아류에 불과할 수 있으니 주제별로 나눠 묶기로 했다. 첫 번째 편은 성장소설, 두 번째는 모험소설, 세 번째, 네 번째 편은 각각 추리소설과 로맨스 소설로 정했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펍헙 에이전시 번역가들이 작업하고 있다.

'펍헙 에이전시' 운영하며 후배 양성도 적극
‘직업인으로서의 번역가의 미래가 뭐냐’는 수강생의 질문에 강 번역가는 “처음 데뷔해서 번역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직장처럼 꾸준히, 쉬지 않고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1년 12개월 동안 꾸준히 번역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상황까지 어떻게 가느냐다.
그가 10년 전 펍헙 에이전시를 꾸린 이유이기도 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후배들이 번역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는 “에이전시를 운영해야 책을 계속 구하고 출간할 수 있다. 번역 일감을 계속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대부분 예비 번역가들이 혼자 번역 연습을 하지만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기가 힘들다. 이미 번역된 책을 보고 자기가 했던 내용과 비교할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펍헙에서는 회원 카페를 만들어 각자 번역했던 내용을 올리고 비교하고 피드백 해준다. 번역가가 되려면 혹은 된 후에도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하다.
펍헙 에이전시는 1년에 두 번 입단 시험을 본다. ‘강주헌의 번역작가 양성’ 과정을 듣는 수강생에게 시험 볼 자격이 주어진다. 합격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공정한 과정으로 번역가 데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매년 많은 이들이 도전하고 있다.

 
강주헌 번역가 특강은 그가 이끄는 펍헙 에이전시 소속 번역가들의 시리즈 특강의 첫 강의였다. 8월22에는 ‘번역, 잘하는 법’을 주제로 노승영 번역가가 번역가가 번역 테크닉을 강의했다. 8월29일에는 각각 다른 경력을 가진 새내기 번역가들이 번역가로 데뷔하는 방법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마지막 9월5일 강의는 하윤숙 번역가가 ‘출판 시장에서 나만의 개성 살리는 방법’을 주제로 프리랜서 번역가로 오래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를 알려준다.

글·사진 최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