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 택시 (2)


남자가 내린 차 안에 찬 기운이 맴돌았다. 한낮은 아직도 얇은 재킷 차림이 간간이 보였지만 공기는 어느새 겨울로 기울고 있었다. 패딩과 모직 상의, 목도리와 스카프, 종종 보이는 반팔 셔츠와 청재킷까지. 계절이 뒤엉킨 옷처럼 사람들은 지하철역 계단에서 두서없이 엇갈리고 있었다. 여덟시 이십분, 출근 시간의 막바지였다.
앞에서 차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택시 승강장에 들어설 때만 해도 대기하는 차량이 열 대가 넘었는데 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내 차례가 되었다. 뒤로도 열 대쯤 줄이 길게 늘어섰다. 여자가 아이를 안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여자는 갈색 트렌치코트에 스카프를 칭칭 둘러매고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외출하기에 불편한 복장이 분명했다. 커다란 짐 가방에 아기 띠까지 꽉 채워 보고 있는 내가 숨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목동 9단지로 가주세요. 나는 여자의 말에 미터기를 켜며 평소 다니는 길을 물었다. 여자는 도로명은 모르지만 길은 안다고 가면서 알려주겠다고 대답했다.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아이는 계속 칭얼댔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배고픈 거 아니에요? 여자 기사니까 편하게 먹이셔도 돼요. 나도 모르게 여자의 가슴에 시선이 멈췄다. 그러나 여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봤다.
하긴 남의 아이 배고픈 것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현서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문득이 아니라 계속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던 중이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아이는 누구에게나 잘 안겼다. 신체 발달이 빠른 아이들은 백일이 지나면서 낯을 가린다는데 현서는 팔 개월이 지나도록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낯가림이 너무 없어 아이에게 문제라도 있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다 사흘 전부터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런 애가 아닌데. 어린이집 선생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라는 듯 현서를 내게서 떼어냈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조그만 손이 빨개질 때까지 내 점퍼를 움켜쥐었다. 한 시간 넘게 차에 싣고 다녀도 방긋거리던 아이였는데, 아이는 점차 엄마와 떨어진다는 의미를 알아가는 모양이었다. 선생님, 오전과 오후 이유식을 용기에 따로 담았어요. 재료를 다른 것으로 바꿔서 잘 먹을지 모르겠네요.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표시를 했다. 그러고는 오늘은 연례행사로 어린이집 교사 엠티가 있으니 여섯시 반까지는 꼭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선생은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 말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아이가 열이 살짝 있다는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택시 공기가 탁해서 그랬던 건지도 몰랐다. 대신 오늘 교대가 여섯시라 늦지 않을 거라고 웃었다.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과 달래는 선생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택시로 급히 뛰었다.
여자는 꽉 묶여 있는 아이를 똑바로 세워 젖병을 물렸다. 아이를 품에 안아 분유를 주면 한결 편할 텐데 여자는 좀처럼 아기 띠를 풀지 않았다. 현서는 편한 자세로 먹이지 않으면 늘 탈이 났다.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괜한 참견인 것 같아 내버려두었다. 나는 차가 흔들려 분유가 새지 않을까, 아이가 체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으로 액셀과 브레이크를 조절하면서 밟았다. 그러나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하는 출근 차량의 행렬 속에서 유유히 운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목동 방향에 들어섰다. 여자는 아이의 젖병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님, 혹시 앞 사거리쯤에서 우회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여자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하자 그때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러게요, 오른쪽으로 틀었어야 했는데. 남의 일처럼 심드렁한 말투였다. 이미 사거리는 지났고, 그 자리에 서려면 길을 한참 돌아야 했다. 도로에는 아직도 차들이 빼곡했다. 한참 만에 택시를 돌려 우회전을 한 뒤 목동에 접어들었다. 안내를 듣기 위해 룸미러를 흘끔거렸다. 여자는 아이에게 분유를 다 먹이고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베이스 화장에 마스카라까지……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골목에 들어서자 한 달 전쯤 취객을 태우고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밤이었고,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한 터라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길이 좁고 복잡해 그때도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말하는 게 귀찮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안내를 받자고 할 것이지. 여자는 아이가 칭얼거리는데도 핸드폰으로 문자만 바삐 보내고 있었다. 나는 여자에게 아이가 답답한 모양이라며 길을 미리 알려주면 빨리 갈 수 있을 거라고 넉살좋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여자는 내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선택해야 할 길은 연이어 나왔지만 승객이 입을 다물고 있어 계속 직진했다. 사실 직진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길이었다. 직진으로 생각되는, 그러니까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덜 치우친 비교적 직선이라고 판단되는 길을 갔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양 갈래 길은 내 판단 너머에 있었다. 손님, 길을 알려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목소리를 높여 룸미러를 쳐다봤다. 여자는 표정 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곧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여기, 여기가 어디에요? 나는 비상등을 켜고 차를 멈췄다. 어떻게 가면 좋을지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목동이 맞는지 재차 확인하고는 왜 마음대로 길을 갔느냐고 떠들어댔다. 무심하게 느껴질 만큼 나른했던 말투가 비음까지 섞여 갈라져 나왔다. 나야말로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엄마의 목소리에 놀라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붉어진 아이의 얼굴을 보니 오전부터 큰소리를 내봤자 이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크게 내쉬고 여자를 쳐다봤다. 손님, 그럼 내비게이션을 찍고 갈까요? 고속터미널에서 목동까지 이 시간에 달리면 만 이삼천 원 정도 나오는데, 어쨌든 서로 오해한 게 있으니까 만 오천 원만 주세요. 대신 꼭 현금으로 주셔야 돼요.
만 구천삼백 원이라고 찍힌 미터기를 끄고, 목동 9단지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차는 경로를 한참 이탈해 있었다. 골목에 들어서 근처라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바쁘지 않을 때면 이삼십 분이면 충분할 거리를 한 시간도 넘게 헤맨 거였다. 미터기는 공허하게 돌아갔고, 나는 계산에서 빼야할 노동을 한 셈이었다.
목동 시가지는 출근과 등교의 번잡함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었다. 도로에는 슈퍼와 정육점에 물건을 대는 탑차와 동네 골목을 다니며 채소를 파는 트럭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내 앞으로 트럭 한 대가 멈췄다. 트럭 기사는 자신의 상체보다 더 큰 박스를 들고 슈퍼 문을 옆구리로 밀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손을 들고는 차 안으로 바쁘게 뛰어 들어갔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차를 돌려 큰 도로로 빠져나왔다.
9단지에 도착했다. 여자는 짐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신용카드를 내 앞에 내밀었다. 나는 물끄러미 여자의 손을 쳐다보다가 얼굴로 눈길을 돌렸다. 여자는 왜 안 받느냐며 내 얼굴 가까이로 카드를 흔들었다. 나는 다시 여자의 얼굴에서 미터기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는 내가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미터기를 쳐다보는 이유를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지금껏 한 번도 짓지 않던 바쁜 표정까지 지으려 들었다. 숨을 골랐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수록 흥분하면 안 되었다. 손님, 택시비가 많이 나올 것 같아서 미터기를 끈다고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미터기를 껐기 때문에 카드는 안 됩니다. 나는 짐짓 태연한 태도로 현금을 요구했다. 그러자 여자가 허공에 대고 허, 하는 공기 빠지는 소리를 냈다. 친정에 애 맡기고 회사 가야 하는 사람을 뱅글뱅글 돌리더니 이제 와서 현금을 내놓으라고요?
순간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여자를 돌아보는 목이 뻐근했다. 여자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보조석 앞에 붙은 운전자 자격 사항을 훑었다. 그러고는 들으라는 듯 회사명과 차량 번호를 중얼거렸다. 달싹거리는 입 모양에서 회사에 쫓아와 따지고 들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스쳤다. 나는 근무 시간 내에 사납금을 채워야 했다. 현서도 제시간에 데리러 가야 했다. 한 번만, 오늘 딱 한 번만 더 참아보자며 주먹에 힘을 천천히 풀었다.
승연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승연은 바빠서 전화 못 받아요, 하면서도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바로 되물었다.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여자의 시선 때문에 여자 탓으로 돌릴 수 없었다. 승연은 금세 말을 알아들었다.
“근데요, 이번 달에 벌써 두 번째인 건 아시죠? 지난달에도 그랬고. 사장이 요즘 사람 정리한다고 벼르고 다녀요. 이러면 나도 힘들어진다고요.”
승연은 거기까지 말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콜 소리로 송화기가 시끄러웠다. 나는 다시는 이런 부탁 안 할게요, 하면서 승연의 답을 기다렸다. 그럼 혹시 걸려도 저한테 잘못 씌우지는 마세요. 승연은 전화를 끊고 카드를 처리할 수 있게 원격에서 기계를 조정해주었다. 그사이에도 여자는 회사에 늦었다고 계산을 재촉했다. 그렇게 바쁜데 여태껏 어떻게 견뎠는지 알 수 없었다. 여자에게 무슨 말을 던질까 잠시 고민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라고 손님에게 늘 하는 인사도 내키지 않았다. 나는 여자를 찬찬히 훑으며 카드와 영수증을 내밀었다. 여자는 낚아채듯 카드를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아침부터 진짜 재수 없게, 라고 뱉으며 아파트로 종종 사라졌다. 갑작스런 허기가 밀려들었다.

근처 기사식당에 들어갔다. 오늘 처음 먹는 음식이었고, 허기가 진 상태인데도 소고기국 건더기가 목에 걸려 이물감이 느껴졌다. 고기를 더 잘게 부술 걸 그랬나. 현서의 목에 건더기가 걸릴까 걱정되었다. 새로 만든 소고기 표고 죽이 현서의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 입이 짧은 아이라 음식이 바뀌면 탐색을 오래 했다. 한 달 젖을 물리고 분유로 돌렸을 때도, 생후 5개월에 접어들어 흰 미음으로 이유식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여자에게 진이 다 빠졌지만 한편으로 아이를 대신 보듬을 사람이 있는 여자가 부러웠다. 현서가 음식을 거부하더라도 선생이 잘 달래 몇 숟갈 넘겨줘야 할 텐데. 입술을 꽉 깨물던 어린이집 선생의 얼굴이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기사들이 두엇씩 어울려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오 개월 전만 해도 나는 그들 틈을 기웃거리곤 했다. 담배 연기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들의 장단을 맞췄다. 그것이 그들의 사회에, 혹은 내가 일하는 곳에서 적응해야 할 어떤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다가 내가 그곳에 서 있어도 달라질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정치와 도박, 여자, 가벼운 스포츠 이야기로 낄낄댈 때 나는 끼지 못하고 주변에서 멀뚱거렸다. 더러 이해는 가요? 하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내 표정을 보고 금세 고개를 내저었다.
싱글맘이라는 동정은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도 못하는 주제에 무책임하게 차를 끌고 나왔다고 비아냥대면 차라리 동정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정은 적어도 상대에 대한 걱정을 담고 있었으니까. 그러지 말고 딴 데를 찾아봐. 택시가 겉보기엔 운전만 하는 것처럼 쉬워 보여도 드나드는 사람이 워낙 다양해서 험한 일이 많이 생긴다고. 여자들이 많이 하는 식당이나 가사 도우미를 나가든지 아니면 사람을 다시 만나보든가. 애도 생각해야지? 화를 내봤자 돌아오는 건 야간조 편성과 조를 바꿔주지 않겠다는 동료들의 거절이었다. 입사 전에 걱정했던 희롱 따위는 그저 부차적인 문제로 느껴졌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동료를 피했다. 교대 시간을 제외하고 사무실에는 되도록 들르지 않았다. 시간이 정해진 일이라 현서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택시를 선택했었다. 계약 기간도 있고, 기본급이 있어 식당보다 안정적일 것 같아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어느새 나는 성격이 예민한 여자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택시 앱을 보고 여자 기사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삼 년이 지나 개인택시를, 아니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대형 면허를 따 마을버스를 몰겠다고 마음먹지만 당장에 현서의 울음을 달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멀리서 동료 기사가 곁눈질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눈길을 피해 커피를 마저 마시고 자리를 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