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패션으로 힐링하는 심플한 옷장>패션힐러 최유리 강사 인터뷰 기사
작성자 센터지기 등록일 2019.08.02

“명품 말고 정체성 입을 때 옷은 훌륭한 소통 도구죠”


지난달 29일 인천의 한 작업실에서 패션크리에이터 최유리씨를 만났다. 그는 유튜브에서 ‘패션힐러 최유리’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최유리씨에게 옷은 뭐죠?” 2014년 늦여름 한 대학병원 정신과 진료실. 서른일곱이던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교사, 대학 시간 강사로 일했던 그에게 질문에 답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물음에는 끝내 입을 떼지 못했다. 그날부터 그는 스스로에게 머리가 터지도록 물었다. ‘나는 왜 옷에 집착했을까. 옷은 나에게 뭘까?’

평생 옷을 사랑했다. 돈만 생기면 옷을 샀고 틈만 나면 쇼핑을 다녔다. “옷을 많이 사면 행복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옷장은 터져 나갈 것 같은데 그럴수록 점점 더 불행해졌어요. 급기야 우울증이 왔죠. ” 최유리(42)씨가 ‘건강한 의생활’을 고민하게 된 이유다.

그는 서울대 사회교육과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도 내리지 못한 채 운전석에 앉아 한 시간씩 우는 날들이 늘어갔다. 언제 또 눈물이 날지 몰라 캠퍼스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못했다.

“정신 차려보니 지금의 인생이 제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었어요. 내 인생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야겠다, 살기 위해서라도 알아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논문을 포기하고 인생을 살리기로 했다. 반년 간 ‘심사받기 위한’ 논문 대신 ‘자신을 위한’ 글을 쓰며, 그동안 살면서 내린 수많은 선택들을 복기했다.

“뭔가 표현하고 창작하고 싶어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학계로 갔어요. 교직 특유의 보수적이고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를 계속 누르며 살았죠. 그 억눌린 욕구가 쇼핑중독이라는 과장된 방식으로 터져 나온 것 같아요.”

‘이대로 살면 앞으로도 계속 우울하고 불만족스럽겠구나.’ 위기감이 든 그는 타인의 기대로 직조된 ‘학자’라는 옷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패션 크리에이터’라는 새 옷을 입었다.

“저는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고, 쇼핑몰 엠디(MD) 같은 경력도 없어요. 그렇지만 미디어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비싼 옷을 아무리 따라해 사도, 한 없이 공허한 그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죠.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일상 속에서 멋지게 입을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서 공유하고 싶었어요. 만화가 김풍도 요리를 하잖아요? 패션 전공자가 아니라고 못할 건 없다 싶었죠.”

그는 먼저 그동안 사들였던 옷을 버렸다. 사과상자로 10개 분량이었다.

“버리면서 알았어요. 어떤 옷이 실패하는지. 그때부터 옷 가격을 예상 착용 횟수로 나눠서 다시 셈해보는 ‘엔(N)분의 1’ 계산법을 익혔어요.”

박사 논문 준비하다 패션 세계로
“나를 표현하고 싶은 열망 컸죠”
작년 유튜브 ‘패션힐러 최유리’ 열어
‘명품 안 입고도 빛나는 법’ 등 소개
‘정체성 입는 법’ 다룬 책도 출간


그동안 보고, 사고, 입었던 수많은 직접 경험과 패션 채널·잡지로 얻은 간접 경험을 버무려 자신만의 이론도 만들었다.

“학자가 되려고 오래 훈련했기 때문에 유사한 것들을 묶어서 이론을 만드는 건 익숙했어요. 이 장점을 발휘해서 ①반대 ②빼기·더하기 ③여백 ④색상 조화의 법칙을 만들었죠. 예컨대, 디테일이 많은 옷보다는 심플한 옷이, 여러 색이 배색된 옷보다는 단색 옷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화시켜 입기 좋죠.”

동시에 실습도 했다. 학교 게시판에 ‘박사 논문 엎고 스타일링 도와드려요’라는 글을 올리고 신청자 열다섯 명에게 무료로 패션 컨설팅을 했다. 그러면서 ‘정체성을 입는 법’을 구체화했다.

“사람들이 명품과 신상에 휩쓸리는 이유는 자기가 누군지, 정체성을 몰라서 그래요. 저는 쇼핑을 가기 전에 스스로 정체성을 규정하도록 해요. ‘무엇이 당신을 화나게 하는지’, ‘3개월 안에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거죠. 저도 이런 질문을 통해 ‘조용한 말괄량이’라는 제 정체성을 찾았거든요. 자기 욕망과 정체성을 옷으로 정확히 표현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싶어요.”

이런 시도를 종합해 그는 책 <오늘 뭐 입지?>(2017·새잎)와 오디오북 <박사 논문 엎고 스타일링>(2019·팟빵)을 펴냈다. 이달 셋째 주 책 <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가제·흐름출판)를 출간한다. 2018년 4월부터 유튜브에서 ‘패션힐러 최유리’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영상은 제목부터 다른 패션채널과 구별된다. 유명 스타일리스트의 채널이 ‘명품 매장 털기’, ‘2019 에스에스(S·S) 컬렉션 신상 뽀개기’를 다룬다면, 그의 채널 ‘패션힐러 최유리’는 ‘명품 안 입고도 빛나는 법’, ‘화이트 티셔츠 스마트하게 입는 법’, ‘패션 잡지 스마트하게 보는 법’을 다루는 식이다. 그는 이 영상을 통해 자신이 ‘어떤 옷’을 사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옷을 사는지를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거식과 폭식 사이에 건강한 식생활이 있듯이, 쇼핑 중독과 극단적 미니멀리즘 사이에 건강한 의생활이 있어요. 명품이나 인싸템(유행하는 옷)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 집중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누리세요. 정체성을 입었을 때 옷은 좋은 소통의 수단이 됩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consumer/904210.html#csidx70715c765695abd926dd826dfa292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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