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32회 한터 백일장 논술 심사평 & 수상작
작성자 센터지기 등록일 2024.05.28
제32회 한터 백일장 논술 심사평 & 수상작

◼︎ 심사평

이번 백일장 논제는 친숙한 주제입니다. 한국 보수 재건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논하는 것입니다. 한국처럼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고, 정치기사 소비량이 많은 사회에서 이 주제는 잘 쓰기 어려운 축에 해당합니다.
입을 가진 사람들은 한 두 마디씩 다 하는 주제를 쓸 때는 유념할 점이 있습니다. 쉽게 예상되는 논지로 쓰는 걸 일단 피해보라는 겁니다. 뻔히 예상하고 있는데, 예상하는 대로 진행되는 걸 지켜보는 것만큼 기운 빠지는 일은 없습니다. 한국 보수의 문제점을 거론하라고 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 ‘보수답지 않은 보수’입니다. 즉, 보편적인 이념 분류로는 ‘수구’ 또는 ‘극우’로 분류할 수 있는 이념이나 세력이 보수로 엮이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를 거론하는 겁니다. 또 하나 예상할 수 있는 키워드는 ‘권위주의’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나 통할 법한 권위주의적 통치 시스템, 문화, 의식, 관행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입니다.
뻔한 글을 쓰지 않으려면 일단 차별성 있는 논지를 구상해봐야 합니다. 예상되는 논지로밖에 쓸 수 없을 때는 논지의 내용을 약간만 바꿔도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예상되는 평범한 논지로 쓰더라도 주요한 사례나 근거를 새롭게 제시하면 내용적 차별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번 백일장 논술 부문에서는 최우수작을 뽑지 못했습니다. 우수작 3편의 완성도는 높았지만, 조금씩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최우수작으로 선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논지의 일관성과 명확성, 구조의 완성도, 논증의 설득력 등 논술이 요구하는 바를 넉넉히 갖춘 글들입니다. 선정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보수 지형을 두 축으로 나눠서 ‘태극기 보수’와 ‘리버럴 보수’로 구분한 글은 분석이 치밀하고 입체적이어서 눈길을 끌었는데 후반부에서 제시하는 대안의 내용이 모호하고 불명확해지는 바람에 선정작으로 뽑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논술 백일장에 응모해준 모든 준비생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는 9월 제33회 백일장에서 또 만나면 좋겠습니다.

◼︎ 우수작1 (김태욱)

과거 권위주의 개발독재를 경험했던 한국 정치지형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평가받았다. 보수 기득권의 담합과 사정기구를 통한 통제 덕에 보수 일방 우위의 불균형한 정치환경이었음을 빗댄 표현이다. 그러나 탄핵정국 이후 연달아 보수정치세력이 선거에서 패하고, 특히 두 차례 총선에서 연이어 참패하면서 한국 보수는 이제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언더독의 입장이 되었다. 수도권 의석 확보에 번번이 실패하며 이제 ‘도로 영남당’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한국 보수가 이토록 고전하는 이유는 과거 그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강자의 지위를 누리게 했던 권위주의 유산을 청산치 못해서다. 전쟁과 개발독재를 경험한 우리 사회의 보수는 통상의 보수 개념보다는 권위주의에 더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의 보수는 공화주의적 전통을 존중하고, 자유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정치경제관을 보인다. 그러나 그간 반민주적 사상통제, 사정 권력을 동원한 권위주의적 통치모델로 기득권을 유지해 온 것이 과거 권위주의 보수다. 87년 민주화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을 겪으며 이제 그 생명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 보수의 재건 역시 이런 구시대적 통치모델을 혁신하는 방향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

보수다운 보수라면 언론과 사상,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자유주의적 관점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수정권 집권기마다 약속한 듯 하락하는 언론자유지수는 한국 보수의 자유관이 얼마나 협소한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공영방송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이용해 인사교체의 방식으로 방송 지형을 틀어쥐려 시도하고, 비판적 언론은 왜곡된 심의기구와 고소·고발, 검찰 수사로 통제하려고만 든다. 공론장에 맡겨야 할 역사와 사상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탄핵당한 정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던 일이 10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독립운동가 흉상을 두고 이념 논쟁을 붙인다. 오히려 역사적 평가가 끝난 광주항쟁의 헌법 수록 문제를 두곤 “표를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판다”는 말이 공당 국회의원 입에서 튀어나온다.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사정 권력 역시 여전히 틀어쥘 대상이다. 대통령 배우자의 비위 의혹 특검은 거부하면서, 총선 패배 후에는 “총장 패싱” 인사로 관련 수사라인을 교체한다. 스스로 유사한 사건을 겪었던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은 총선 참패 이후 “민심을 듣겠다”는 명분으로 사정권을 쥔 민정수석을 공약까지 파기하며 부활시켰다. 법치질서와 권력분립을 존중하는 보수세력이라면 사정권력은 통제가 아닌 독립성 보장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집권당은 지금으로선 그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과거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은 “새는 좌와 우의 양 날개로 난다”고 했다. 이는 국가폭력으로 인해 왜곡됐던 과거 우리 사상과 정치지형을 우려한 비판의 통찰이었다. 그러나 그 한 날개를 꺾었던 과거의 자신들의 못된 버릇이 오늘날 한국 보수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합리적으로 전진하는 민주정을 위해서는 말 그대로 ‘좌와 우’의 양 날개 모두 필요하며, 합리적이고 건전한 보수의 부재는 우리 정치와 국민 전체에게도 큰 불행이다. 한국 보수가 스스로 겪는 위기가 우리 정치의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과거 권위주의의 낡은 유산을 과감히 버리는 혁신으로 국민에게 다시 답해야 한다.

◼︎ 우수작2 (마가연)

수구가 보수를 대체했다. 보수는 본래 변화를 거부하는 집단이 아니다. ‘점진적’ 개혁이라는 보다 효과적인 수단을 취할 뿐이다. 반면 수구는 일체의 변화를 거부한다. 수구는 보수라는 미명으로 우리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박정희 시대의 사고방식에 갇혀 나아갈 방향을 상실한 것이 한국 보수의 현주소이다. 과거 보수는 경제 성장을 명분으로 독재와 권위주의를 정당화했고 지금의 보수는 여전히 이를 답습한다.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대학생은 입을 틀어막힌 채로 강제 퇴장당했고, 대통령실과 이견을 보인 이들에겐 보복성 압수수색이 뒤따랐다. 낡은 권위주의의 산물이다. 과거에 이룩한 부국강병의 영광에서 보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보수를 지탱해 온 발전주의 신화는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박정희 정권 아래 비약적인 성장을 경험했던 청년들은 노인이 되어 정치권의 변두리로 내몰렸다. 공백을 메운 것은 386세대와 지금의 청년들이다. 민주주의를 유보하여 경제를 성장시킨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자신의 자유나 평등은 희생의 대상이 아니다. 보수의 권위주의 역시 묵인해 줄 이유가 없다. 국민은 권위주의에 반발하며 새로운 질서를 요구했지만, 보수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과거 반공주의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反진보에서 보수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했다. 22대 총선에서의 참패는 이를 방증한다. 변화를 증명하지 못한 보수는 이념도, 정체성도 잃은 진공상태에 빠졌다.

보수의 재건을 위해서는 조속히 권위주의를 해체해야 한다. 권위주의는 보수의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이다. 권위주의의 해체를 위해서는 인적 쇄신이 필수적이다. 국민은 그간 권위주의의 혜택을 누린 보수 인사들에 일찍이 염증이 났다. 보수 정당이 수차례 당명을 바꾸며 쇄신을 외쳐도 효과가 없던 이유다. 이념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당내 민주화 등의 노력도 결국 인적 쇄신이 수반되어야만 성과를 거둘 것이다 .

해묵은 이념을 폐기할 때 비로소 보수는 새 이념을 세울 수 있다. 보수의 본질은 기존의 가치를 지키며 점진적인 변화를 이뤄나가는 데 있다. 급진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으니, 진보보다 실용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한국의 보수도 본질로 복귀할 때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시대에 맞는 의제를 유연하게 수용해야 한다. 과거 영국 보수당의 수장 윈스터 처칠의 행보를 참고할 만하다. 그는 복지 국가의 흐름을 수용하고, 노동당의 의제를 적극 흡수해 당의 저변을 확대했다. 유연성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발전적인 정책을 제시할 때 비로소 국민은 화답할 것이다. 보수의 품격을 되찾는 것이 곧 보수를 재건하는 길이다.

한국과 같은 거대 양당 체제에서 보수의 몰락은 곧 진보의 승리로 비칠 것이다. 하지만 견제의 대상이 사라진다면 진보 역시 길을 잃을 것이다. 진보가 힘을 쓰지 못하던 박정희 시대의 보수 정권이 그러했다. 보수의 위기는 곧 진보의 위기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진영 간의 대화와 견제가 공공선을 증대하는 길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지속을 위해서는 보수가 ‘보수’로 속히 복귀해야 한다.


◼︎ 우수작3 (신지윤)

한국 보수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사실상 양당 체제인 한국 정치에서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범야권에 192석을 내줬다. 192석 중 유일한 보수인 개혁신당마저 고작 3석을 차지한 게 전부다. 반면 윤석열 정권 심판을 내세워 보수를 정조준한 조국혁신당은 개혁신당과 창당 시점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3배에 이르는 12석을 확보했다. 의석수 확보가 정책 추진의 동력인만큼 보수 정당에 영남 지지층 이외의 새로운 ‘믿을 구석’이 필요하다. 좌와 우 사이, 아직 지지 정당을 결정하지 못한 중도는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이다. 보수는 정치의 ‘블루오션’인 중도를 사로잡아야 한다.

중도는 이념에 좌우되지 않는 반면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자신이 속한 성별, 세대, 계층에게 얼마나 유리한 정책을 내놓는 지가 표를 결정하는 근거다. 우선 중도가 많은 집단이 어디인지부터 따져야한다. 중도의 쏠림 현상은 세대와 계층에 있어 확인 가능하다. 세대의 경우 중장년층보다 청년 세대에서 중도 비율이 높다. 특히 2030세대는 지역 색채가 옅고 그렇다할 지지정당이 없는 유권자가 많기에 선거에서 ‘스윙보터’로 불리기도 한다. 계층의 경우 부유층보다 서민에 더욱 집중되어 있다. 부유층이 워낙 소수이기 때문에 두 집단을 면밀히 비교하지 않더라도 중도는 서민일 가능성이 더 크다. 청년과 서민, 이렇듯 보수의 공략 대상은 둘로 좁혀진다.

여태 청년과 서민은 보수보다는 진보와 어울리는 단어였다. 사회 주류가 아닌 사람들의 영역을 넓히는 것을 넘어, 부자의 권력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필요성까지 이야기하는 진보의 목소리는 이상적일지라도 청년과 서민의 이해에 부합한다. 반면 보수는 전통과 안정을 주요 가치로 삼기에 오히려 이들과 상반되는 기득권의 이해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크다. 보수가 청년과 서민에게 설득력 있는 정당이 되려면 진보적 가치와의 타협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는 보수의 방향성을 완전히 버리고 진보 정당의 담론을 답습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기업에 많은 혜택을 주면서 노동조합을 '카르텔'로 규정하는 현재의 ‘기득권 대변인’ 지위에서 벗어나, 진보정당과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는 것. 보수가 나아갈 길이다.

정부와 보수 여당이 무엇보다 진보적인 분야가 있다. 바로 백년대계로 불리는 교육·노동·연금 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부분이 많아 개혁이 필요하지만 진보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에선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보수 정당은 3대 개혁에 앞장서는 동시에 청년과 서민의 이해를 개혁안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가령 연금 개혁은 청년 세대의 부담을 덜기 위해 사전적으로 정부 재정을 투입하여 기금 고갈을 늦추고, 필요한 재원을 기업의 법인세로 충당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듯 보수는 ‘진보적일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 역시 보수당의 일원으로서 자유 시장 경제를 옹호했으나, 복지 정책을 마련하고 노동당의 의제를 흡수했다. 보수의 정체성인 ‘레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 보수를 재건할 수 없다. 진보적 가치인 ‘블루’를 유연하게 수용하는 것만이 정치의 ‘블루오션’인 중도를 사로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