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28회 한터 백일장] 논술 심사평 & 수상작
작성자 센터지기 등록일 2023.05.04
28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논술 부문

논술 심사평

외교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점에 대해 논하는 것이 이번 백일장의 논제였습니다. 외교정책을 세울 때 고려해야 할 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원칙, 기준, 철학, 방향성 등을 무엇으로 정해야 하는지를 먼저 정리해야 쓸 수 있는 주제입니다. 글의 내용에 대북정책, 대미정책, 대일정책, 대중정책의 사례를 모두 포함하라는 조건도 있어서 쓰기가 까다로운 축에 속하는 논제입니다.

최우수작은 여느 글들과 논지를 다르게 정리한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동안의 대한민국 외교가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 데 급급했다면, 앞으로의 외교는 국가의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심리학자 매슬로의 이론을 외교 분야에 끌어와 쓴 것도 돋보였습니다.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한 우수작 1, ‘양면 게임을 인용해 외교정책의 원칙을 정리한 우수작 2, 일관성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제시한 우수작 3은 모두 완성도가 높은 글들입니다.

논술 백일장에 응모해준 모든 준비생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는 7월 제29회 백일장에서 또 만나면 좋겠습니다.


■ 최우수작 (한종태)

한국이는 개도중을 지나 선진고에 입학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학교에는 두 명의 친구가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일본이가 괴롭힐 때 한국이를 도와줬던 미국이와 소원해진 북한이와 친하게 지내는 중국이가 그 두 명이다. 힘이 약했던 한국이는 미국이와 가까이 지내면서도 중국이의 눈치를 보며 어느 쪽이든 버림받지 않으려 힘썼다. 다행히 그동안 한국이는 많이 성장했다. ‘훌륭한 학생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한 덕이다. 예전에 다퉜던 북한이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고, 일본이에게 맞은 흔적도 괜찮으니 화해하자며 다가갔다. 그런데 둘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되려 미국이와 중국이는 누구 편인지 정하라며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심리학자 매슬로가 지금 한국이를 본다면 자아실현의 욕구를 우선하라고 조언할 것이다. 친구 사이에서 끌려다니기보다 주체적인 행위자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외교에서 기본 욕구를 채우는 데 급급했다. 성장이 목표였으니 제법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60158달러였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은 2020년에 약 3만 달러로 200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그래서 타국과 의존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과는 동북공정의 문제에도 최대 흑자국이기에 친하게 지냈고, 미국과는 원조부터 확장억제까지 기대며 반도체와 전기 자동차 수출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선진국이 되어도 미래의 먹거리를 협상해야 하는 처지다. 과거의 얽힌 문제를 푸는 일도 중국과 미국의 이념 대립에 영향을 받는 중이다. 한미일 동맹을 깰 수 없어 일본의 반격 능력 보유에 강하게 항의하지 못했다. 오염수 방류나 위안부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강제노동 배상도 국민의 59%나 반대하는 제삼자 변제에 기댔다. 꾸준한 북한의 핵 도발이나 개성공단 무단 사용에 대한 미온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성장을 이룬 한국은 이제 어느 방향이 자국에 이익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수동적인 외교 자세로는 국민의 자유와 안전은 보장할지 몰라도, 국가의 자아실현은 이룰 수 없다.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전 세계 57위라는 한국의 행복지수가 말해주듯,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에는 다른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자아실현은 물질적, 사회적 욕구를 넘어 스스로 충만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세계의 위계질서 속에서 외교는 책임과 명분 사이에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다. 미국과 중국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그린딜을 내세운 유럽처럼 한국만의 질서를 좇아야 국가의 자아실현, 곧 국민의 정신적 자기만족이 가능하다. 내부적으로 복지와 사회정의를 추구하면서 대외적으로 진영 논리를 넘어서서 한국의 이익을 따질 필요가 있다.

주체적 행위자는 능동적으로 선택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외교를 할 때 자국이 상징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한다. 한국도 이제 외교정책 판단에 한국만의 북극성이 필요한 이유다.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의 말처럼 보다 높은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성장시키려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물론 이때 국민이 부여하는 권위가 집단 이기주의나 전체주의로 향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끊임없는 합의를 거치면서 북한과 통일을 해야 할지, 일본과 화해해야 할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정할 때 한국은 타국과 동등한 지위로 외교에 임할 수 있다. ‘대체 불가능한 진정한 강대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한국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다.


■ 우수작1 (천현정)

외교 정책의 방향을 정하면서 전략적 자율성이 가장 중요하다. 전략적 자율성이란 우리의 외교적 선택이 자율성의 영역을 일부라도 남겨두는지를 말한다. 지금은 미국의 국제적·경제적 리더십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이란 타협에서 보듯 중국의 영향력은 여전히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테슬라와 애플 등 거대 미국 기업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 정부의 기조와는 달리 중국에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외교의 역할 중 나라 밖의 일이 나라 안에 미치는 충격을 관리하는 역량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나라 밖 여러 변수들이 국내 정세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변수를 관리하며 전략적 자율성을 펼칠 공간을 지켜내야 한다.

우리의 외교적 선택이 이념을 내려놓고, 나라 밖의 변수에 대응하며 자율성을 확보했을 때 외교 상황이 무탈히 흘러갔다. 노태우 정권은 보수 정부라는 이념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북방 외교의 문을 열었다. 1989년 헝가리와의 수교를 필두로 1990년 소련, 1992년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나아가 북한과 UN 동시 가입까지 달성했다. 체제경쟁이 종식 되어가던 탈냉전 시대라는 흐름을 활용한 선택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반미 진보 정부라는 이념적 가치에도 한미FTA를 추진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경제적 위기가 예견되자, 경제 위기 속에서 고립되는 결말을 막기 위해 미국에 편승하는 실용적 흐름을 선택한 것이었다.

지금의 한국 외교는 변수관리가 미흡하다. 이념 외교라는 상수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는 비단 대미·대일 협력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이념·가치에 지나치게 편승한 나머지 한미일 협력이라는 한쪽 노선으로만 기울어져 있다. 이념에 편승한 지금의 외교는 여러 변수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북핵 위협이 방치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의 핵 개발은 막으면서 전술핵 재배치 등 확실한 핵 억지 제공은 주저하고 있다. 일본은 동북아 권역에서 군비 증강에 힘쓰고 있다. 자칫하면 한국이 북중러 연대의 최전선에 위치한 국가가 될 위기에 처했다. 미국 중심의 진영과 북··러 연대의 대립이 격화된다면, 북한 관리와 대중 무역을 놓을 수 없는 한국이 자율성을 완전히 잃은 채 한쪽으로 편승될 위험이 크다.

이념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다변화되는 변수에서 자율성을 완전히 잃는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북한과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 등 난처한 요구에 직면할 때도 그간의 이념적 외교 노선이 걸림돌이 된다. 일정 수준의 변수에 대응할 실용적 외교를 놓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가령 지금의 한미일 협력 기조 속에서도 한일 양국이 공동 대응하는 실용적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이 한국과 일본이 원하는 자유무역과 상반된다는 점에서 미국에 자유무역 질서를 요구할 수 있다. 지금의 정부는 변수 관리를 위한 유연함을 꾀해야 한다.


■ 우수작2 (최현정)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로버트 퍼트넘은 외교는 국가 간 협상인 외부게임과 국내정치인 내부게임이 동시에 진행되는 양면게임이라고 말했다. 흔히 외교는 국가와 국가 간 협상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국내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 대외협상에 성공해도 국회, 기업, 시민단체 등 복잡하게 얽힌 국내 이해관계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정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일관계가 진전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5년 타결된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와 국회, 시민사회의 동의 없이 이뤄진 협상이었다. 정부는 지난날을 반성하고, ‘국내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을 만큼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외교정책을 펴야 한다.

정부는 외부게임이전에 내부게임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간 우리나라는 국가 간 협상에만 지나치게 몰두해 내부 구성원의 극심한 반발을 산 경우가 많았다. 98년 한미투자협정체결의 경우, 스크린쿼터제 폐지에 대한 국내 영화계의 격렬한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고, 2008년 한미 FTA는 극적으로 타결되긴 했으나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극에 달해 시위대와 경찰 간 폭력적인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모두 정부가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합의를 이뤄낼 만큼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어난 미국 도감청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어떠한 설명도 없이 상당 부분 조작됐다. 국익을 위해 언론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이야기만 하니, 국민들 입장에선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국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국내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미국에 할 말은 해야 한다.

물론 국가 간 협상도 중요하다. 그러나 내부게임은 오히려 외부게임의 협상력을 높이는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상대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국내 구성원들의 득실에 따른 반대의견을 이유로 양보를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갈등 사이에서 한국은 이 카드를 활용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에는 손실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대치로 인한 국민적 불안을 들어 중국에는 미국과의 동맹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기업의 경제적 손실과 고용난을 들어 미국에는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관계를 져버릴 수 없음을 확고히 해야 한다. 이를 무시한 채, 대통령 홀로 핵무장, 한미일 공조, 강경 대응을 주장하며 한쪽의 편만 들려 한다면 그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된다.

내부게임의 파이를 키워, 원칙 있는 외교정책을 펴야 한다. 그간 우리나라는 줄곧 강대국들에 휘둘려왔다. ‘외부게임에만 지나치게 공을 들인 탓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라는 서방측 의견을 수용해 러시아의 대북지원, 군사적 조치라는 위협을 받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북한이며, 우리 국민은 전쟁 없는 평화를 원한다. 이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 러시아나 중국이 북한을 돕는 빌미를 주어선 안 된다. 나아가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카드로 활용해 북한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지, 대통령이 아니다. 정부가 민의와 다른 행보를 이어나간다면 그 길은 결코 성공길이 될 수 없다. ‘외교정책은 양면 모두에서 성공할 때,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퍼트넘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 우수작3 (이승엽)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달라지는 외교정책으로는 국익을 도모할 수 없다. 문재인 정권에서 추진했던 외교전략은 윤석열 정부에서 180도로 뒤집혔다.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한 이후 중국과의 갈등은 심화되고 부조리한 미국의 행태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항의도 하지 못하게 됐다. 평화모드에서 강대강 모드로 돌아선 북한관계는 한반도의 핵위협을 고조시키고 있으며 섣부른 한일관계 복원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 맞물려 갈등의 골을 더 깊이 만들고 있다. 여야 모두 국민의 뜻'을 부르짖으며 한쪽의 입장만을 반영하는 외교전략을 추구하지만 정권마다 바뀌는 외교방향은 상대국이 물어뜯기 좋은 약점으로 작용한다. 국민과 정치권을 아우르는 외교전략 수립이 국익을 도모할 수 있는 일관된 외교전략의 출발점이다.

외교는 상대국이 원하는 것을 내주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이 매 정권마다 달라진다면 내주는 외교'만 반복할 수밖에 없다. 3자 변제안과 관련해 일본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관성에 있었다. 일본은 아쉬움이 있어도 한국과의 관계에서 완강함이라는 일관성을 버리지 않은 반면 한국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섣부르게 외교방향을 전환했다. 국민 설득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내부동력을 얻을 수 없었고 결국 한국은 명분과 실리 모두를 빼앗겼다.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의 도돌이표 속에서 북한은 더 이상 한국정부를 주요 협의 대상으로 상정하지 않고 오직 미국만을 협상파트너로 삼았다. 중국은 친미와 반미를 반복하는 한국에 대해 연신 경제보복을 일삼으며 길들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패착의 원인은 일관성을 상실한 외교전략에 있다.

일관된 외교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선 초당적 합의라는 주춧돌이 필요하다. 진보든 보수든 모든 정권은 국익을 달성하기 위해 외교정책을 만든다. 그러나 한쪽이 완강히 반대하는 외교전략은 국민 분열을 가져올 뿐이다. 국민이 분열되면 외교에 제대로 된 힘이 실릴 수 없다. 심화되는 미중패권 경쟁 속에서 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을 택하든 윤 정부의 미국 중심주의를 택하든 그 어떤 정책도 완벽할 순 없다. 모든 전략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결정된 외교전략이 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제상황이 뚜렷하게 변화되기 전까지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뒤바뀌는 외교전략에 설득될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관된 외교전략을 위해 의견이 다른 국민과 정당을 먼저 설득해 내부를 단단히 다져야만 하는 이유다.

미국과의 초밀착 외교로 윤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적으로 만든 진정한 대상은 절반의 국민이다. 윤 정부의 외교정책에 설득되지 못한 국민이 다음 정권 때 어떤 외교정책을 지지할지는 자명하다. 일관된 외교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그 구성을 정파성에서 자유로운 외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하되 여야 정치인들이 동수로 참여해 공통의 의견을 이끌어내고, 합의된 외교정책을 정당이 각 지지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외교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익 수호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개진한 자국 중심주의 외교를 일관되게 추진해나가고 있다. 정권에 관계없이 긴 호흡으로 일관된 외교노선을 걸어가는 것, 국익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