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수강생 인터뷰] '2018 시인동네 신인상' 수상한 이리영 시인_이영주의 시창작 합평반 수료

  •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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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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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출작가 인터뷰
글터 수강생 이리영씨는 지난달 말 ‘2018 <시인동네>’ 신인상에 당선됐다. 4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초등학생을 둔 ‘엄마’의 등단 소식에 다들 놀랐다. 젊은 세대들의 등단이 줄을 잇고 있는 요즘 시단에서 흔치 않은 일이었다.
초등학생을 키우며 가정을 꾸리기 바쁜 그가 언제 시를 쓸 틈이 있었을까. 이 씨는 지난 2년간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이영주의 시창작 합평반’ 수업을 10번이나 들었다. 8월20일 센터 근처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처음에 시를 어떻게 쓰게 됐나.
“의상학과를 졸업한 후 소설을 써보고 싶어서 서울예술대학교 문창과에 다시 입학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시는 과제로만 가끔 썼다. 어느 날 시낭송회 때 낭송할 재학생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혔다. 그때 내 시가 다른 이들에게 ‘시’로 다가가 읽히는 것에 놀랐다.”

- 시를 쓰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
“졸업 후 소설 습작을 하다 한 문예지 최종심에서 떨어진 후 글 쓰는 것을 그만뒀다. 미련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후 10여년이 흘러 40대 중반이 됐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시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허황된 결심이었다.”

- 습작 시절, 어려움은 없었나. 슬럼프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가 시를 쓰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시를 썼다. 아이가 학교에 간 9~12시까지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시 쓰는 시간이 한정적이라 생긴 장점도 있다. 습작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딱히 슬럼프를 느낄 틈이 없었다(웃음).”

- 시를 쓸 때 천착하는 주제가 있는지.
“어떤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쓰기에 내공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저 내가 처한 감정과 상황에서 실마리를 잡아서 쓰는 편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두서없이 무엇인가 쏟아낸다. 그러다 순간적 몰입감을 느낀다. 좋은 시가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뭔가 쓰여지긴 한다.”

- 시가 한 단계 높아졌다고 느꼈을 때가 있었나.
“읽다가 너무 어려워 덮어둔 시집을 무심코 펼쳤는데 ‘너무 좋다’ 느꼈을 때 시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직접 쓸 때도 ‘이번 시는 제대로 망했구나’, ‘이번 시는 그래도 이 부분은 실릴 수 있겠다’ 감이 오긴 오더라.”

- 등단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 주변 반응도 궁금하다.
“방콕에서 가족 휴가를 보내던 중에 소식을 들었다. 호텔 방에서 딸아이와 함께 팔짝팔짝 뛰었다. 가장 기뻐했던 분은 엄마다. 글을 쓰고 싶어 했던 딸이 뒤늦게 등단했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좋아했다.”

- 특별히 좋아하는 시가 있다면.
“읽은 시가 빈곤해 특정 시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요즘은 젊은 작가들 시를 읽고 있다. 다른 이의 시를 읽다 보면 내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시를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는 게 더 도움이 된다.”

- ‘이영주의 시창작 합평반’을 지난 2년간 10번 들었다. 한터 수업이 등단하는 데 도움이 됐는지.
“한터 수업에 기대어 시를 썼다. 이 수업이 없었다면 몇 번 써보지 못하고 제 풀에 지쳤을 거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오전 합평반 수업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 이 수업을 꾸준히 들으면서 시가 조금씩 늘었고, 합평 때 제출한 시로 등단까지 했다.”

- 등단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일단 등단을 목표로 한 이상, ‘등단할 때까지’ 라는 각오로 꾸준히 쓰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특히 혼자 쓰는 것보다 수업을 듣거나 모임을 꾸리는 것이 좋다. 다른 이들과 서로의 습작시를 평가하면 훨씬 유익하다. 나는 강사였던 이영주 시인과 잘 맞았고 내 시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

-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지금 아이가 방학 중이라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 여유가 없다. 앞으로 어떤 시를 쓰게 될지는 나 스스로가 제일 궁금하다.”

글·사진 최화진



* 이리영 시인의 당선작 <가방들> 외 4편의 작품은 <시인동네> 9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가방들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의 가방을 들고 나왔다
 
내가 모르는 슬픔은 슬픔이 아니므로
 
나는 고기를 썰고 당신과 입을 맞추고 저 햇빛 아래 빈 유모차를 끌고 고기를 씹고 인공 호수에 물고기 밥을 뿌리고
 
어떤 가방은 끝내 열리지 않아 그런 날이면
 
철조망을 따라 걸었다 내가 아는 슬픔 또한 슬픔이 아니어서
 
붉은 손톱자국 부서진 피아노의 건반들 깃털만 가득한 새장 당신이 키우는 식물의 그늘을 지나
 
어느덧 커튼이 쳐진 거실에 당도하는 것이었다
 
푸른 수영장 텅 빈 바닥에 버려진 갈색 가방처럼
 
아무 것도 좇지 않고 누구의 손도 마주 잡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당신만 아는 슬픔은 슬픔이 아니므로
 
커튼 너머 저 햇빛 아래 아무도 울고 있지 않았다 믿기지 않아
 
나는 로즈메리 이파리를 씹고 검은 개의 목줄을 쥐고 언덕에 오르고 책을 읽고 당신의 두 손을 내 가슴에 가만히 얹고 모두가 떠나고
 
벽에 기댔다 기대고 나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아 누구든 기다리는 자세로
 
욕조에 물이 넘쳤다
 
가방들이 바닥과 함께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