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회 손바닥 문학상 대상] 파지 (2) _ 최준영 (김현영의 다짜고짜 소설쓰기 수료)

  • 201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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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강생 작품

영업팀으로 이동한 첫 주, 마땅히 자리도 없어서 탕비실 탁자 위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 말곤 할 게 없었다. 영업팀장은 지금은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일주일쯤 지나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할 일 없냐고 묻자, 지금은 없고, 정 할 거 없으면 물통이라도 갈든가 하며 정수기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영업팀장이 나가고, 예서는 물통을 갈고 탕비실을 청소했다. 제대로 된 물걸레도 없어서 휴지에 물을 적셔 먼지를 닦았다. 종이컵도 채워넣고, 녹차 티백의 열도 맞췄다. 예서를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인사를 하기도 안 하기도 어색한 상황이었다. 휴대폰이라도 하면 괜찮으련만, 꼬투리를 잡힐 수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눈을 오래 감고 있지도 않았다. 조는 것처럼 보일까봐 사람들이 올 때면 긴장했다. 신경 쓰이기는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분위기는 일주일쯤 지나니 말끔히 사라졌다. 실상 영업팀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언제쯤 자리가 생기냐는 예서의 항의에도 기다리라는 말뿐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지친 예서가 거칠게 항변하면 팀장은 “왜 또 파업하려고?” 같은 말을 하며 비아냥대기 일쑤였다.

그렇게 항의와 체념의 시간이 축적되던 사이, 예서는 어느새 탕비실 담당이 되어 있었다. 커피가 떨어지거나 녹차 티백이 동나면 어김없이 예서의 이름을 불렀다. 예서씨, 휴지가 없네요, 예서씨, 여기 좀 닦아줘요, 예서씨, 녹차 말고 율무차로 사다주세요 등등의 요구들이었다. 공장에서 동료들과 부대끼던 때가 그리웠다. 이곳은 너무 삭막하고 외로웠다. 그럼에도 예서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농성천막을 애써 외면한 채 커피믹스를 채워넣었다. 현재로선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으므로, 묵묵하게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예서가 파업을 포기했음에도 진철을 향한 시선은 좀처럼 나아질 길이 없었다. 직원들은 뒤에서 예서를 흉봤다. 옮기란다고 진짜 옮기냐고 눈치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동료를 배신했다는 사람, 본인들은 면접에 시험에 힘들게 입사했는데 쉽게 사무직으로 신분 세탁했다고 억울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기획서를 제출할 때, 점심 먹을 때, 모든 순간에 예서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진철은 참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람들은 화젯거리가 생기면 곧잘 잊어먹으니까. 어쨌든 예서는 잘리지 않았고, 파업을 관뒀기에 제자리를 찾을 거라는 믿음이 진철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다른 건 다 참아도, 그중에서 진철을 가장 견딜 수 없게 하는 게 있었다. 사람들이 예서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들은 예서를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파지 취급을 했다. 쓸모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같았다. 마치 예서의 고용주가 본인들인 양, 뭔가를 시켜댔다. 처음엔 자잘한 부탁도 눈치 보며 하던 사람들은 총무팀장 박찬숙이 탕비실 하수구에서 냄새가 난다며 예서에게 청소를 시킨 이후부터 요구의 크기를 키워갔다. 진철은 일부러 탕비실에 가지 않았는데, 그곳을 쓸고 닦는 예서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서였다. 예서는 누구보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불량 스티커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고 꼼꼼히 체크하며 한 부분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예서에게도 실직에 대한 상실감이 클 터였지만, 그 모습을 보는 건 진철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본인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걸 알았기에 진철의 죄책감은 커졌다.

사무실 사람들이 밥 먹으러 내려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예서는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달걀말이와 시금치무침, 연근조림, 김치 등 반찬들이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냄새날까 미리 열어둔 창문에서 제법 차가워진 초겨울 바람이 들어왔다. 따뜻한 밥과 반찬은 아니었지만, 예서는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점심시간만큼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으니까,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으니까 긴장이 좀 풀렸다. 직원식당에 가지 않은 지는 꽤 됐다. 남아 있는 생산팀 직원들을 마주치는 것보다 차라리 다 식어 딱딱해진 찬밥을 먹는 게 나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서러움이 복받쳤다.

예서가 반쯤 밥을 먹었을 때, 다이어트를 시작해 끼니를 거른 박찬숙이 불쑥 탕비실로 들어왔다. 찬숙은 문을 열자마자 “이게 무슨 냄새야?” 하며 코를 막았는데, 예서는 까다로운 성미인 찬숙을 잘 알아서 얼른 뚜껑을 덮으려다 도시락을 바닥에 엎었다. 찬숙은 그 광경을 보고, 어이없게 쳐다봤다.

“박예서씨, 소풍 왔어요?”

예서가 어쩔 줄 몰라 당황하자 찬숙이 미간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안 치우고 뭐 해요?”

예서는 무릎을 꿇고 맨손으로 반찬을 모았다. 손바닥 모양대로 김칫국물 자국이 남았다. 박찬숙은 예서를 밀치고 싱크대로 가서 손을 닦았다. 그녀는 불길한 것을 없애려는 듯 손을 탈탈 털었는데, 그때 찬숙의 손에서 이탈한 물방울이 예서의 이마 위로 톡 떨어져 미간으로 흘러내렸다. 간질거렸지만 양손이 더러워진 예서는 할 수 없이 어깨춤으로 쓱 닦고, 반찬 뚜껑을 덮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탕비실에서 식사를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었다. 경고문은 예서가 붙였다. 예서는 치욕스러운 마음이 들어 차라리 회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는데, 조금만 버티면 한 달 월급이 나오는 것을 알고 남은 날짜를 세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문득 그러고 있는 본인의 처지를 생각하자, 무척이나 서러워졌다. 금세 눈물이 고였다. 요새 예서는 자주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씩씩했는데, 바닥으로 곤두박질쳐버린 자존감이 그녀를 극한으로 몰아갔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었다. 소속되어 있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느낌이 들어 처참했다.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그들은 더 강하게 예서를 밀어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예서는 한숨조차 삼키며 흘러나오는 눈물을 재빠르게 닦아냈다.

 

*


결국 예서는 피켓을 들고 다시 거리에 섰다. 회사는 한 달이 지나도 직무를 주지 않았고, 자리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강력한 항의는 비아냥과 인신공격으로 되돌아왔고, 아무도 예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제 발로 나가라는 듯, 방치와 방임만이 있을 뿐이었다.

농성천막에는 고작 다섯 명만이 남아 있었다. 예서는 그 옆에서 1인시위 피켓을 들었다. “부당 해고를 위한 강제 발령 철회하라”는 말을 노란 글씨로 써 붙였다. 파업 참가자들은 그런 예서를 두고 보이지 않게 혀를 찼다. 배신하고 가더니 꼴좋다며 없는 사람 취급했다. 파업을 시작할 때, 함께 이겨내보자던 끈적한 동료애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예서는 그들에게도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생산과장이 예서에게 다가왔다. 예서는 고개 숙여 꾸벅 인사했다. 생산과장은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신 후, 예서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묶어 볼 것 같으니, 좀 떨어져서 할 수 없겠느냐고, 엄연히 다른 시위인데 경계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예서는 그들에게 밀려 경비실 옆 외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정문보다 더 인적 드문 별관 건물 앞이었다. 커다란 느티나무 가지에 해가 가려서 그늘이 늘 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경비 아저씨는 바닥을 쓸 때마다 예서를 귀찮아했다. 왜 여기서 그러냐고, 다른 데서 하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럴 때마다 예서는 이를 악물고 피켓을 힘껏 쥐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느낌이 들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악에 받쳤다. 종일 서 있는 것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초겨울 바람에 몸이 꽁꽁 얼었다. 잠깐 햇볕이 들 때 몸이 녹았다가 다시 싸늘하게 식어 더 추웠다. 농성장 천막이 그나마 보호막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예서는 멍하니 서서, 진철에 대해 생각했다. 며칠 전, 참지 못하고 이별을 고해버린 그날이 떠올랐다. 1인시위를 하겠다는 말에 결국 진철은 눈물을 왈칵 쏟았다. 꼭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느냐고, 나 좀 살려달라고, 우리 같이 좀 살자고 울었다. 그러면서도 진철은 본인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고 거듭 미안하다고 했는데, 예서는 그런 진철이 불쌍해 헤어지자고 했다. 진철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그치고, 진심이냐고 물었다. 내심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예서는 매몰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철은 눈물을 닦고 예서의 자취방을 나갔다.

진철은 파주 시내 한복판을 터벅거리며 걷다가 예서와 본인의 삶이 왜 붕괴돼야만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곱씹었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뭐 때문에 이렇게 꼬인 건지. 애초에 예서가 오산 공장으로 갔다면 우리가 이렇게 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본인이 회사를 관둬야 했던 건지. 그는 자문했지만, 답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진철이 알 수 있는 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내일의 현실이었다. 고작 현실, 처절함에 술이라도 진탕 먹고 싶은데 아침 7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 그러지도 못하는 현실. 불투명한 미래를 희망 삼아 시위해야 하고, 피켓을 들어야만 하는 현실이 그들에겐 남아 있던 것이다. 벗어날 수 없고, 답이 없는 현실을 살아내느라 두 사람은 그렇게 멀어져야 했다.

그 후 진철이 예서를 만난 건, 예서가 삭발하던 날이었다.

진철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예서의 방에 두었던 옷가지를 챙기러 갔다. 외근이 있어 그날은 회사에는 가지 못했다. 예서에게 옷을 가지러 가겠다고 문자를 남겨놓았지만, 답은 받지 못했다. 밤 아홉 시가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진철은 본인들의 생일 끝자리를 조합한 비밀번호를 누르고 예서의 자취방 문을 열었다. 불은 꺼졌는데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예서야?”

이불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진철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예서의 두 발이 이불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예서야, 자?”

다시 한번 묻자, 예서가 턱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

“옷 가지고 가. 불은 켜지 말고.”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했지만, 진철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어두워서 옷을 찾을 수 없어 되물었다.

“예서야, 옷 구별이 안 돼서 그러는데 불 켜면 안 돼?”

예서는 그제야 이불 밖으로 나오더니 전기 스위치를 딸각 눌렀다. 진철의 눈앞엔 훤히 두상을 드러낸 예서가 있었다. 아직 다듬지 않은 정원의 덤불처럼, 제멋대로 자라난 잔디처럼 머리카락이 제각기 잘려나가 있었다. 진철은 당황스럽고,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옷가지를 떨어뜨렸다. 예서는 그 옷들을 다시 주워 주며 “이상해?” 묻고, 웃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바닥엔 정리하지 못한 진철의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진철은 두 손을 모으고 천장 귀퉁이를 쳐다봤다. 예서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예서는 혹여 진철이 더는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마음 한편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란히 침대에 누웠는데도, 야릇한 감정이 들기는커녕 분위기가 서먹했다. 바닥이 따뜻했는데도 집에 한기가 도는 것처럼 냉랭했다.

“머리 왜 밀었어?”

진철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것까지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려고.”

“삭발한다고 회사에서 알아주는 건 아니지 않나….”

“생산팀장이 다시 받아줄 테니까 삭발식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했어. 너무 외로워서.”

“….”

그 말을 들은 진철은 쓸쓸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조금씩 모든 걸 잃어가는 예서가 안쓰럽고 불쌍하게 느껴져서 목이 메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진철의 마음을 잘 아는 예서가 돌아누워 분위기를 바꿨다. 진철을 밑에서 올려다봤다. 어색하게 손을 진철의 허리춤에 둘렀다. 진철은 그런 예서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랜만에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변한 건 상황이지 감정이 아니었다. 예서의 심장이 툭 내려앉았다. 떨리는 마음을 미소 속에 억지로 감추듯 예서는 배시시 웃었다.

“이제 나 안 예뻐? 남자 같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넘긴 예서는 그 말을 하고 진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진철은 예서를 꽉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옷이 축축해질 정도로 흐느꼈다. 까끌까끌한 예서의 머리카락이 턱 밑을 따갑게 할수록 진철은 더 꽉 예서를 품었다. 그의 온기에 몇 달간 꽁꽁 얼어붙은 예서의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렇게 그 겨울, 두 사람은 마음을 다해 서로를 위로하며 처절했던 시간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바깥에선 창문을 두드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만이 공허하게 들려왔지만, 두 사람의 귓가엔 닿지 않았다.

[한겨레 21] 제 10회 손바닥 문학상 대상 <파지> - 최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