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 택시 (3)

지갑에서 사천삼백 원을 꺼내 사납금 봉투에 집어넣었다. 우회한 바람에 허비한 연료도 떠올랐지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아직은 열시밖에 되지 않았다. 아침은 든든하게 먹었으니 점심은 편의점 빵으로 때워도 되었다. 오늘은 꼭 빨리 돌아가 현서의 이유식을 챙겨야지, 나는 도로를 두리번거렸다.
목동을 세 바퀴째 돌았다. 역 주변과 아파트 단지를 오가며 삼십 분당 한 명꼴로, 다섯 명의 단거리 손님을 태웠다. 택시 앱도 콜도 조용했다. 운전대를 돌리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어린이집이었다. 어머니, 현서가 열이 나요. 38.6도라서 해열제를 먹여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해열제를 먹여도 된다고, 그보다도 병원에 데려갈 수 있냐고 사정했다. 선생은 엠티 준비와 아이들 견학 행사로 선생들이 모두 외부에 나가 있어 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선 상비약을 먹이고, 다른 선생이 돌아오는 대로 병원에 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나는 잠깐만 시간 내시면 안 될까요, 선생님? 하고 재차 물었다. 선생은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다른 아이들은 누가 보고요? 목소리에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전화를 끊기 전에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건 그렇고요. 오늘은 일 년에 한 번뿐인 행사라 절대 늦으시면 안 돼요. 나는 사람이 많은 신촌으로 차를 돌렸다.

닫아두었던 차창을 모두 열었다. 평일 오후라 양화대교는 내다보이는 직선거리만큼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십오 분 뒤 신촌에 도착하면 가까운 거리를 요구할 학생들 때문에 타고, 내리고, 계산하고를 반복해야 할 터였다. 바빠지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오른손으로 핸들을 쥐고, 왼손은 뻗어 바람을 맞았다. 차가운 기운이 금세 온몸에 퍼졌다.
대교가 끝나는 지점에서 두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둘은 긴 검정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체격이 달라 다른 옷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대교를 건널 때면 버릇처럼 지나는 사람을 관찰했다. 두 번쯤 그 길을 비척거리며 걸어본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행동을 보일 거다. 차가 막혀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사람들의 표정을 들여다봤고, 속도가 나면 난간에서 얼마나 떨어져 가는지 눈대중을 했다. 그들은 동행인 듯 아닌 듯 한 사람은 난간 가까이에, 한 사람은 도로 가까이에 걸었다. 나이도, 성별도 짐작할 수 없었다. 난간 쪽으로 걷는 사람은 이민 가방처럼 보이는 큰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긴장감에 운전대를 바로 잡고 속도를 줄였다. 택시가 가까워지자 도로에 붙어 걷던 사람이 손을 들었다.
남녀였다. 여자는 키가 크고 마른 체구였고, 남자는 살집이 있고 작았다. 둘이 나란히 앉았는데 앉은키로도 여자가 십 센티미터는 더 커 보였다. 드문드문 흰머리와 잔주름이 선명한 얼굴로 보아 사십대 중후반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이었다. 남자는 서류 봉투를 무릎에 올리고 안쪽에 앉았고, 여자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은 뒤 오른편에 자리를 잡았다. 같은 옷을 입고 나란히 앉았지만 떨어져 있는 모습이 대교에서 걷던 그대로였다. 아무려나 한 시간 만에 맞는 손님이라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나는 행선지를 물었다. 여자가 저음의 담담한 목소리로 천안의 한 아파트를 이야기했다.
반대편에서 오던 사람들이라 양천구나 강서구를 향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천안이라니 순간 위치가 떠오르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 왕복 시간을 계산했다. 시간은 두시 이십분, 큰 사고로 막히지 않는다면 다섯시 반까지는 충분히 돌아올 거리였다. 어쩌면 교대 시간에서 삼십 분쯤 남아 여유를 부릴지도 몰랐다. 마지막 손님을 장거리로 태우다니 역시 오늘은 운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여자에게 교대 시간을 말하며 장거리에 난색을 표했다. 요금에 고속도로에서 드는 비용까지 받으려면 손님에 따라 종종 앓는 소리도 필요했다. 여자가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그냥 가달라고 기운 없이 대꾸했다. 여자가 미터기에서 삼만 원을 더 얹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손님에게 두 번째 질문을 던지려고 룸미러를 살폈다. 둘은 양쪽 차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내비를 켜고 가겠습니다, 하고 큰 소리를 내자 여자가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올림픽대로는 아침과 다르게 여유가 있었다. 초겨울 햇살을 맞아 자동차들이 눈부시게 옆을 지나갔다. 속도를 내는데도 급해 보이지 않는 건 점점 차분해지는 마음 탓일 거다. 택시에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와 자동차가 내는 소음만 들렸다. 운전용 선글라스를 거치대에서 꺼내면서 안개가 걷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수고가를 따라 사평지하도로 내려가는데 앞차가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다. 나는 갑자기 켜진 라이트를 보고 급제동을 걸었다. 택시는 다행히 사중 추돌을 바로 앞에 두고 멈췄다. 아찔한 기분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운전대에 얼굴을 묻고 숨을 고른 뒤 뒷좌석을 돌아봤다. 남자는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의 발밑에는 찢긴 종이가 수북했다. 혹시 사고 때문에 겁이라도 먹었나. 괜찮으냐고 물으려는데 여자가 입을 뗐다. 오래전에 폭풍이 지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그런 건조한 투였다.
“어차피 다 처리된 걸 뭐하러 힘을 써?”
남자는 고개를 흔들며 봉투에서 종이를 더 꺼냈다. 업무용 서류 같은 용지가 흘깃 보였다. 둘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건 택시를 태우기 전부터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 찢긴 종이를 치우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표정 없이 말을 건네는 그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일단 차를 출발시켰다. 도로는 사고로 인해 순식간에 엉켜 있었다. 여자가 말을 이었다.
“가방에 넣을 건 다 넣은 거지? 애한테 상황 잘 설명해. 괜한 이야기 보태지 말고.”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남자가 내 좌석을 강하게 걷어찼다. 나는 갑작스러운 반응에 비명을 지르고 어깨를 움츠렸다. 핸들을 놓쳐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바로 운전대를 잡고 차선으로 복귀했지만 엉겁결에 놀란 차량들이 거칠게 경적을 울리며 옆으로 차를 들이댔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따지는 건 나중의 문제이고 운전에만 집중하자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핸들을 움켜쥐었다. 엉겨 붙던 차들이 차츰 시야에서 멀어졌다. 호흡을 겨우 진정시키고 뭐 하는 거냐고, 그럴 거면 내리라고 룸미러를 보고 소리 질렀다. 반포 인터체인지 근처였다. 남자는 서류를 모두 찢고는 서류 봉투까지 조각내고 있었다. 여자가 한숨을 쉬며 조절 장애가 있다고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말투가 꼭 문제 있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보호자처럼 지쳐 있었다. 나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운전을 계속했다. 그들은 낮은 소리로 조용히 다투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천안에 도착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 차량을 더 만나는 바람에 예상 시간에서 사십 분이나 지체했다. 시간은 벌써 네시 오십분을 넘겼다. 남자와 여자는 차창에 얼굴을 붙이고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다. 핸드폰에는 현서에게 해열제를 다시 먹인다는 메시지와 여섯시 반까지 꼭 데리러 오라는 문자가 연거푸 들어왔다. 아직 시간은 괜찮다고, 돌아갈 때 속력을 내면 된다고 마음을 다독였지만 눈은 자꾸 시계로 향했다. 천안역을 지날 즈음 남자가 입을 열었다.
“거기 말고. 오른편으로 돌아요.”
남자는 얼굴을 앞으로 내밀고 내비게이션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우회전을 해서 길을 돌면 마을이 나올 거라고 덧붙였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저수지가 있는데 저수지 앞에 있는 집을 찾아가면 된다고 했다. 아파트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하는 질문에 주소를 몰라 그렇게 설명했다고 여자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거의 다 와 간다고 흩어진 종이를 쓸어 모았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으로는 저수지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였고, 도로 옆으로 띄엄띄엄 상가와 집들이 스쳐 갈 뿐이었다. 괜한 욕심으로 멀리까지 온 건 아닌지 초조해 시간을 다시 체크했다. 두 번째 약을 먹였으니 현서는 좀 나아졌겠지. 여기까지 왔는데 승객을 길가에 내버리고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회사가 아닌 어린이집으로 부리나케 차를 돌려야 될 거 같았다. 남자가 호흡을 가쁘게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뭘 얼마나, 애한테 고개도 못 들만큼 죄를 지었어? 나 진짜 다 나은 것 같단 말이야. 짐은 안 챙길래.”
룸미러를 쳐다봤다. 여자가 남자의 상의를 붙들고 있었다. 꽉 끼는 점퍼가 위로 말려 터질 것처럼 목을 조였다. 거의 왔다면 몇 분 뒤에는 도착할 텐데 조금만 참아줄 것이지, 이젠 짜증마저 일었다. 혼자 모퉁이에 서 있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닌 과거를 꺼내 현재를 위로하곤 했다. 옆에 사람이 있던 시간을 떠올리며 절망할 때도 많았다. 저들은 무슨 일로 이곳에 내려왔을까. 내가 그들보다 나은지 더 살아보지 않아서 판단할 수 없지만 저 정도 지친 얼굴을 내보일 사이라면 물리지 않은 태엽을 맞춰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알았다고 여자를 힘없이 밀쳤다. 여자는 붙들던 상의를 놓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모른 척 운전을 했다.
야트막한 산에 접어들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산책로는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 바퀴가 구를 때마다 택시가 통통 튀었다. 내비게이션은 길을 잃어 주변을 다시 검색하고 있었다. 불쑥 튀어나온 나뭇가지들이 택시 앞 유리를 줄기차게 때렸다. 여기서 또 우회전이요,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내 머리를 치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다 왔다는 저수지는 아직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 이상 참는 건 바보짓이었다. 나는 교대 시간이 여섯 시 반이라고, 여기서 내려 걸으면 안 되느냐고 급한 목소리를 냈다. 여자는 정말 곧, 이라고 차분하게 대꾸했다.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병원에 갔다 왔는데도 현서 열이 안 떨어져요. 언제쯤 오실 거예요? 다섯시 이십칠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내젓고 몰래 숨을 삼켰다. 아, 곧 금방 가요. 여섯시 반까지잖아요. 선생은 내 대답에 안심하며 현서가 걱정되니 되도록 일찍 데려가면 좋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해 질 녘 햇살이 차에 길게 들어오고 있었다. 길을 따라 차를 몰면 저수지 앞의 집이 나올지, 시간 계산이 점점 희미해졌다. 간간히 들어오던 빛도 사라져 시야를 멀리 두던 차에 남자가 탄성을 질렀다. 듬성듬성한 소나무 사이로 언뜻 주황 해가 비쳤다. 저수지와 갈대에 둘러싸인 낚시 초소가 보였다. 저수지는 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담고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남자가 서지도 않는 차에서 내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공이 구르듯 날쌔고 부드럽게 내리막을 뛰었다. 순간 놀라기도 했지만 난데없이 벌어진 일이라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다. 상체가 좌석을 맞고 운전대에 거칠게 닿았다. 어리둥절해 여자를 돌아봤다. 여자는 택시 밖 남자를 향해 욕지거리를 뱉고 있었다. 무덤덤하게 말하던 여자는 어디에도 없었고, 화를 참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만 남았다. 여자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 도대체 어디까지 도망칠 건데! 하고 외치며 남자를 따라나섰다. 나는 주차 모드로 기어를 바꾸고 사이드를 채웠다. 차에서 빠르게 내려 사라지는 여자를 쫓았다. 그러나 해가 막 사라진 저수지는 갈대가 사방으로 우거져 남녀가 어디로 뛰었는지 모습도, 소리도 추적할 수 없었다. 곳곳에 흩어진 낚시 초소에는 사람도 없이 낚싯대만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저수지 앞에서 소리를 내질렀지만 돌아오는 건 물 위로 공명하는 메아리와 어수선하게 나부끼는 갈대 소리였다.

미터기는 쉬지 않고 돌아가 이십만 팔천 원을 찍고 있었다. 현실감 없이 깜빡이는 빨간 숫자가 현서의 끓는 이마에 손을 닿은 듯 저렸다. 아침에 끄고 내버려둔 블랙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사라진 남녀의 흔적은 좌석 뒤편에 찍힌 발자국과, 찢긴 종이와, 트렁크 속 캐리어가 전부였다. 귓가에 차창을 때리는 바람과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요란했다. 여섯시를 알리는 시그널이 울렸다. 현서는 아마도 곧 선생들과 엠티를 떠날 것이다. 어쩌면 열이 많이 떨어져 선생들에게 재롱을 떨며 안겨 있을지 모른다. 사납금은, 꼭 오늘이 아니라도 채울 수 있으니까, 채워 넣을 거니까 다 괜찮을 거다. 나는 빛이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나지막이 뇌까렸다.
다리를 억지로 끌어 차 뒤편으로 갔다. 저수지 바람에 한기를 느껴 어깨를 움츠렸다. 트렁크를 열고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커다란 캐리어에는 작은 운동화 한 켤레가 들어 있었다. 한쪽 발만 흙으로 엉망이 된 아동화가 양쪽 구석에 한 짝씩 널려 있었다. 신발을 꺼내려고 캐리어 속에 상체를 넣어 손으로 휘저었다. 가방 안은 바람이 들지 않아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운동화를 옆으로 밀고 캐리어에 발을 넣었다. 들어가지 않을까 봐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지퍼를 끝까지 잠갔다. 캐리어의 천이 등에 부드럽게 닿았다. 구부린 채로 좌우를 살폈다. 바깥보다 더 까만 밤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감각을 흩어놓았다. 슬슬 일어나 움직여야 하는데 다음 행선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끝)